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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체육계 현안진단②] 문체부의 대한체육회 '예산 패싱' 논란…"왜 체육 현장의 목소리 듣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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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이후 문체부와 체육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운영 전반', 체육회는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체육 업무 행태'를 문제 삼으며, 서로를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체육계 현안에 대한 '호통'이 끊이지 않았지만, 체육 발전을 위한 '진정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문체부와 체육계가 갈등을 빚는 주요 현안을 짚어보고, 엘리트생활 체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배정호, 정형근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 8월 체육단체 지원 예산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생활체육 예산 416억 원을 대한체육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자체에 교부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체부는 체육인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보조금 관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체육계는 이를 ‘보복성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체육의 자율성’을 이유로 문체부와 잦은 마찰을 빚자 문체부가 ‘체육회 예산 패싱’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를 통해 시도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에 지원하는 예산은 연간 4200억 원 규모이다. 문체부는 전체의 10% 수준인 416억을 지자체에 직접 교부하는 것 이외에도 종목단체 지원을 포함한 예산 체계를 추가 개편할 계획을 밝혔다.

문제는 체육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산을 받는 지자체와 실제로 예산을 운영하는 시도체육회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대한체육회의 예산을 빼앗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결국 체육 행정의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문체부는 그동안 대한체육회 길들이기 수단으로 예산을 활용했다. 2016년 통합체육회 출범 당시에도 지금과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예산을 빼앗고 난 이후 체육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면 그때서야 다시 체육회에 예산을 돌려줬다. 문체부가 체육 발전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체부의 말을 잘 들으면 예산을 주고, 듣지 않으면 예산을 빼앗는 식으로 체육계를 좌지우지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실제로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 당시 문체부는 체육회를 배제한 채 경기 단체에 직접 예산을 교부했다. 그러나 문체부의 예산을 직접 받은 경기 단체들은 사업승인 지연과 정산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행정력 낭비와 비효율성 문제가 불거졌다.

문체부는 결국 예산 직접 교부 1년 만인 2017년 총 953억 원의 경기 단체 예산을 다시 대한체육회를 통해 재교부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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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체육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생활체육 사업은 대부분 정부의 국고보조금으로 이뤄진다. 문체부는 내년부터 체육회를 통하지 않고 바로 지자체로 생활체육 예산을 교부하면서 ‘지방비 매칭’을 통한 사업비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지자체가 국고와 지방비를 통합 관리해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복잡다단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역체육 담당자는 "내년에 문체부가 지자체로 직접 예산을 집행하면, 지자체는 추경예산을 반영해 매칭 사업을 만들어야 하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추경예산은 보통 6-7월경에 반영될 수 있어 사업은 8월 이후 하반기에 시작될 확률이 매우 높다. 생활체육 사업이 늦어지는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이 입을 것이다. 또한 국고와 지방비를 통합해 관리하면 사업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생활체육 현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역과 종목 간 불균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지방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사업이 축소 운영되고, 인기 종목 위주로 지원이 이뤄지면서 비인기 종목 소외의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문체부 실무직원도 "대한체육회는 체육 행정에 전문화된 인력들이 포진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곳이 대한체육회였다. 하지만 지자체로 직접 교부해서 문제가 생기면 문체부와 지자체들은 서로 각자 책임을 회피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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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는 지자체 체육국장 회의(24. 3월, 10월)와 지자체 체육과장 회의(24. 5월)를 개최했다. 그러나 사업수행 주체인 대한체육회와 시도체육회, 종목단체 회의는 진행하지 않았다.

송진호 전남체육회장은 지난달 체육계 공동 기자회견에서 "생활체육 예산 416억을 지자체에 직접 집행한다고 하는데 종목 단체 회장들에게 상의 한마디를 했나? 일선에서는 모두 거부한다. 기금 10억을 주면 지방비를 10억 보태서 사업을 해야 하는데 지방에 그런 지자체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현장의 목소리도 모르고 소통하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하는 문체부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충북체육회 윤현우 회장도 "문체부는 문화와 체육, 관광을 담당하는 곳이다. 문체부 체육국장은 대한체육회 당연직 이사다. 그러면 체육회 이사회나 임시총회에 참석해 체육계의 입장을 듣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유인촌 장관이 된 이후 체육국장은 이사회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며 소통하지 않는 문체부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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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문제는 지자체의 체육예산이 자칫 ‘정치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이미 과거의 사례가 존재한다.

2020년 이전까지 지방체육회 회장직은 해당 자치단체의 시장 또는 도지사가 당연직 회장 (ex. 서울시장=서울시체육회장)을 맡았다. 그런데 민선회장을 선출하면서 체육 예산을 두고 정치적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음은 2022년 민선회장 1기 출범 당시 A 지자체에서 벌어진 일이다.

1. A 지자체장이 지방체육회 회장에 특정 정당이 미는 후보를 출마시켰지만 낙선
2. A 지자체장은 긴급하게 조례개정을 해서 지자체 내에 비영리 특수목적 체육단체 설립
3. 지자체 체육예산을 지방체육회가 아닌 비영리 특수 목적 체육단체(A지자체장이 만든)에 집행하려고 시도
4. 대한체육회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에 대한 문제제기: 지방체육회 목적사업침해
5. 국민체육진흥법 취지에 반한다는 법제처 해석에 따라 실행 중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아는 관계자는 "기존 추진 사업을 지자체로 직접 이관하면 지방체육회의 사무에 관한 사항도 지자체가 설립한 다른 체육단체에 이관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 경우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간의 갈등이 지자체와 지방체육회 간의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어 체육 행정 집행의 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인사이동 잦은 문체부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혼란은 체육계가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장(시장 및 도지사)과 결이 맞으면 지방체육회(체육회장)는 예산을 받을 수 있고, 결이 맞지 않으면 예산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 지자체 체육 예산이 선거 표, 정치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생활 체육예산은 엘리트 체육과 다르게 국민의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문체부가 성급하게 지자체로 직접 예산을 집행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을 수 있다.

문체부가 추진하는 생활체육 예산 지자체 직접 교부는 국회의 심의를 남겨두고 있다. 문체부의 생활체육 예산 직접 교부가 진정 국민과 체육계를 위한 결정인지, 아니면 대한체육회와 힘겨루기 끝에 나온 자충수인지 스스로 되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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