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2 (일)

혼돈의 K여자 바둑계…‘새판 짜기’ 촉각, 향후 권력 향배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0년 이상 절대권력 행사해온 최정 9단 주춤
차세대 주자인 김은지 9단 성장세 뚜렷
일본 천재 소녀 객원 기사인 스미레 3단 강세
최근 상승세인 오유진 9단도 공방전 가담
한국일보

최정 9단이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2024 북해신역배 세계바둑오픈’(우승상금 180만 위안, 약 3억3,800만 원) 국내선발전 여자조 2차 예선 결승에서 오유진 9단에게 패한 이후, 복기를 진행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K여자 바둑계의 권력 쟁탈전이 뜨겁다. 상위권 기사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갈수록 달아오르면서다. 여기에 올해부터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일본 천재 객원 기사의 깜짝 활약상도 판도 변화를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11일 한국기원에 따르면 인공지능(AI) 등에 편승한 기력의 상향 평준화 양상과 더불어 세대교체 바람까지 더해진 국내 여자 바둑계엔 ‘새판 짜기’가 한창이다.

이런 흐름은 국내 여자 바둑계에서 10년 이상 절대권력을 행사해왔던 최정(28) 9단의 주춤세와 무관치 않다. 지난 2010년 5월 입단한 최 9단은 2013년 12월 여자랭킹에서 1위에 오른 이후, 올해 7월까지 128개월 연속 지존 자리만 고수했다. 현재까지 통산 796승359패(승률 68.92%)를 기록 중인 최 9단은 최다승과 최고승률, 최다연승(20승) 등에서 여전히 독보적이다. 특히 국내외 여자 기사들에겐 통산 534승112패(82.90%)로, 월등한 기량을 과시했다. 그랬던 최 9단은 지난해부터 최근 5년 동안 매년 100대국 이상씩 소화하면서 쌓였던 극심한 피로감을 공공연히 호소했고 승률 또한 기대치를 밑돌았다. 실제, 여자 기사들에게 거둔 최 9단의 올해 성적은 35승19패(64.81%)에 그쳤다. 올해 8월, 2위로 내려왔던 국내 여자 랭킹을 9월부터 1위로 끌어올리면서 이달에도 ‘넘버1’ 자리에 마크됐지만 수성을 장담하긴 어려운 형국이다.
한국일보

김은지 9단이 지난 6일 강원도 강릉 허균ㆍ허난설헌 기념관에서 열렸던 ‘제4회 난설헌배 전국 여자바둑대회’(우승상금 5,000만 원) 허서현 4단과 결승 3번기(3전2선승제) 가운데 2국을 벌이고 있다. 앞서 1국을 가져간 김 9단은 이날 대국 승리에 힘입어 2연승으로 이 대회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일찌감치 차세대 권력으로 점찍힌 김은지(17) 9단의 기세는 무섭다. 현재 통산 348승174패(66.67%)를 작성 중인 김 9단은 올해 여자 기사들에겐 45승7패(86.54%)로, 윽박질렀다. 이는 지금까지 여자 기사들을 상대로 축적했던 통산 승률(79.26%, 214승56패)을 넘어선 수준이다. 기세도 상당하다. 김 9단은 지난 6일 열렸던 ‘제4회 난설헌배 전국 여자바둑대회’(우승상금 5,000만 원)에서 우승을 차지, 이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김 9단은 특히 현재 진행 중인 ‘2024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우승상금 5,500만 원)에서 여수세계섬박람회팀 소속으로 출전, 12전 전승을 달리고 있다. 김 9단의 현재 분위기를 감안하면 최 9단과 절대 열세인 누적 상대 전적(6승16패, 23.81%) 개선도 기대해볼 만하단 평가다. 바둑TV 해설 위원인 박정상(37) 9단은 “’넘버1’을 향한 최 9단과 김 9단의 자존심 대결은 올해 국내 여자 바둑계의 최대 관전 포인트”라며 “당분간 두 선수의 경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일본 바둑 신동으로 알려진 나카무라 스미레(15) 3단이 한국 이적 이후 첫 기자회견을 가진 지난 3월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향후 포부 등을 밝히고 있다. 스미레 3단은 지난 2019년 4월, 일본기원의 영재 특별전형으로 바둑계에 입문하면서 일본 바둑계 사상 최연소 입단(10세30일)을 갈아치웠다. 일본 프로바둑기사 가운데 한국 바둑계로 이적한 경우는 스미레 3단이 처음이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0대 소녀 용병으로, 올해 현해탄을 건너온 나카무라 스미레(15) 3단은 국내 여자 바둑계 권력 구도 재편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월부터 한국기원으로 이적한 스미레 3단은 올해 현재 66승33패(66.67%)로,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 여자 기사들에게만 가져온 성적이 무려 39승10패(79.60%)다. 승률이 무려 80%에 가깝다. 덕분에 지난 4월, 16위로 출발한 국내 여자 바둑 랭킹은 6개월 만에 5위(10월 기준)까지 치솟았다. 바둑TV 해설 위원인 송태곤(38) 9단은 “스미레 3단의 승부욕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치고 올라올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라며 “스미레 선수의 현재 성장세는 2, 3년 뒤에나 예상됐던 흐름이다”라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2019년 4월 당시 일본 기원의 영재 특별 전형으로 바둑계에 입문한 스미레 3단은 자국내 사상 최연소 입단(10세30일)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엔 '제26기 여류기성전'(500만 엔, 한화 약 4,600만 원)에서 타이틀 획득에 성공, 일본내 최연소 우승 기록(13세11개월)도 세웠다.

이 밖에 최근 안정감이 배가된 오유진(26) 9단의 행보도 관심사다. 오 9단은 세계 메이저 대회인 ‘2024 북해신역배 세계바둑오픈전’(우승상금 180만 위안, 약 3억3,800만 원) 여자조 예선에서 최 9단과, 김 9단, 스미레 3단 등을 차례로 꺾고 본선행 티켓까지 따냈다. 오 9단은 앞선 ‘제7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우승상금 50만 위안, 한화 약 9,500만 원) 통합 예선도 통과, 본선행에 합류했다. 올 들어 66승24패(73.33%)로 상승세인 오 9단은 최근 12경기에서만 10승2패(83.33%)를 수확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내 여자 바둑계가 ‘춘추전국시대’로 흘러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바둑TV 해설 위원인 홍성지 9단은 “당장, 김은지 9단이나 스미레 3단 등을 포함한 10대 기사들의 약진세부터 눈에 띈다”라며 “세대 교체 시점에 들어선 국내 여자 바둑계엔 상당한 각축전이 벌어질 전망이다”라고 내다봤다.

허재경 선임기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