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
10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168회에서는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박민아 교수가 강연자로 출연해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아이작 뉴턴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쳤다.
르네 데카르트에 푹 빠진 뉴턴은 데카르트 사상을 기조로 과학적 연구를 해나갔다.
천동설이 주를 이루던 시절,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뉴턴은 달이 왜 떨어지지 않고 지구 주위를 도는지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을 본 뉴턴은 문득 중력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나아가 '만유인력의 법칙' 개념을 만들었다.
뉴턴은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달이 궤도를 벗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지구에서 당기는 힘과 달의 관성 운동이 균형이 맞아 지구 주위를 돌게 됐다'고 생각했다.
26세에 교수가 된 뉴턴은 강의 내용이 어려워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수강생이 0명이어서 벽 보고 강의를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강의에 대한 열정이 식은 뉴턴은 혼자 연구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광학의 발전에 보탬이 됐다. 시력이 손상될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빛의 특성을 연구했다. 사람의 눈이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바늘로 눈꺼풀과 안구 사이 틈을 찔러보기도 했다. 망막의 굴곡이 바뀌면 어두운 선이 생기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토대로 기존의 망원경보다 길이가 훨씬 짧고 40배 이상의 효과가 있는 망원경을 만들었다. 해당 발명으로 영국 왕립학회 정회원 자격을 부여받은 뉴턴은 실력있는 학자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와 표절 시비 논란에 휩싸였다. 뉴턴이 미적분의 개념을 설명한 논문을 작성했지만 바쁜 일정으로 미뤄뒀고, 가까운 학자 친구들에게 내용을 얘기했다. 그렇게 10년 간 뉴턴의 논문이 잠자고 있던 사이, 라이프니츠도 미적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라이프니츠가 미적분 개념을 발표하자 뉴턴의 미적분 논문이 언급됐다. 이를 알게 된 라이프니츠가 뉴턴에게 편지를 썼지만 뉴턴은 암호를 사용해 답장을 했다고.
두 사람의 논쟁이 결정적으로 꼬이게 된 사건은 라이프니츠의 1684년 미적분 논문 공식 발표였다. 뉴턴이 뒤따라 미적분 논문을 발표하자 라이프니츠는 분노했다. 그 이유는 미적분 기호때문이었다. 뉴턴은 원래 논문에서 기호를 사용하지 않았고 라이프니츠는 기호를 사용했는데 뉴턴이 먼저 나온 라이프니츠의 논문을 보고 기호를 비슷하게 따라 쓴 것 때문이었다.
이는 영국과 독일의 국가적 분쟁으로 확대됐다. 뉴턴을 지지하던 영국 왕립학회와 독일의 학자들이 더이상 연구 교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라이프니츠가 "결론을 내달라"며 영국 왕립학회에 판단을 요구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당시 왕립학회 학회장이 뉴턴이었다고. 그 사실을 알고도 라이프니츠는 판단을 요구했다. 영국 왕립학회는 뉴턴의 논문을 인정했다.
윤소희는 "결국 두 사람 모두 미적분 만든 것을 인정 받았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미적분의 개념과 기호는 라이프니츠의 방식이다"라고 부연했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 캡처 |
뉴턴은 연금술에 빠져 30년에 걸쳐 연구했다. 실험 시 수은을 많으 사용해 치명적인 위험에 처했다. 우울증, 불면증, 과대망상 등 정신질환에 시달린 뉴턴의 고통은 수은 중독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종교에 빠지기도 한 뉴턴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을 해석하고 비밀을 해독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뉴턴은 2060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뉴턴은 자신의 과학적 연구를 집대성한 책 '프린키피아'를 만들었다. 뉴욕 경매에 나온 '프린키피아'는 한화로 44억에 낙찰됐다고 한다.
54세에 조폐국에 부임해 위조 화폐 범죄 수사까지 한 뉴턴은 조폐국 국장까지 승진했다고 전해진다.
1720년, 뉴턴은 주식 투자로 인해 인생에 큰 위기를 겪었다. 뉴턴이 남해회사의 주식을 샀지만 폭락했고 그로 인해 약 2만 파운드, 대략 4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사람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뉴턴은 부동산 투자로 재기했다. 당시 부동산 투자로 3만 2천 파운드, 약 65억 원을 벌었다.
윤소희는 "뉴턴은 한평생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성애자, 무성애자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뉴턴이 죽기 전 주치의에게 한 말이 있다. 주치의 말에 의하면, 뉴턴은 평생 동정이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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