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혐오 딛고 이탈리아 여자배구 첫 올림픽 금메달 주역
벽화까지 등장…'다민족 이탈리아의 승리' 해시태그 유행
파올라 에고누 |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 여자배구 대표팀의 나이지리아계 간판 공격수 파올라 에고누(25)가 인종차별의 설움을 딛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에고누는 11일(현지시간)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배구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미국을 상대로 양 팀 최다인 22점을 터트리며 세트 스코어 3-0 완승을 이끌었다.
배구 강국 이탈리아는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컵, FIVB 세계선수권대회 등 메이저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지만 유독 올림픽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올림픽 메달은 고사하고 남녀를 통틀어 준결승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이탈리아에 역사적인 첫 배구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한 에고누는 파리 올림픽 여자배구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며 겹경사를 맞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로마에 있는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CONI) 본부 외벽에는 에고누를 기리는 벽화가 설치됐다.
라이카라는 이름의 길거리 화가가 그린 이 벽화에는 에고누가 공을 스파이크하는 모습 아래에 '이탈리아다움'이라는 글귀가 적혔다. 라이카는 "인종차별, 증오, 외국인 혐오·무시를 멈추라"고 썼다.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다민족 이탈리아의 승리'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인 감독인 훌리오 벨라스코의 지휘 아래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에고누, 아이슬란드 태생의 러시아 귀화 선수인 예카테리나 안트로포바가 맹활약하면서 대표팀의 다민족 구성이 주목받은 것이다.
이처럼 에고누는 대표팀 '순혈주의'를 깨고 이탈리아의 스포츠 영웅으로 거듭났지만 그동안 다른 피부색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압박과 비난에 시달리며 적잖게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2022년 FIVB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이탈리아가 브라질에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SNS를 통해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쏟아지자 참다못한 에고누는 대표팀 잠정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이탈리아 전역에서 응원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마리오 드라기 당시 총리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에고누에게 "이탈리아 스포츠의 자존심"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지난해에는 이탈리아 현직 육군 장성이 에고누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 파장을 낳았다.
로베르토 반나치 육군 소장은 에세이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 "파올라 에고누? 그녀의 신체적 특징은 이탈리아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흑인이 어떻게 이탈리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에고누는 반나치 소장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부적절하지만 명예훼손은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에고누는 인종차별에 흔들리지 않고 이탈리아 배구 역사를 새로 썼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는 12일 "에고누가 인종차별자들에게 통쾌한 스파이크를 날렸다"고 평가했다.
반나치 소장은 이후 정계에 입문해 극우정당 동맹(Lega) 소속으로 올해 6월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이날 AGI 통신에 "에고누의 능력에는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다만 그의 신체적 특징이 대다수 이탈리아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올림픽위원회(CONI) 본부 외벽에 설치된 에고누 벽화 |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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