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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임애지 이길 것 같았는데 판정패… “내가 깔끔하지 못한 것” 승복, 4년 뒤 LA 금빛 노린다 [올림픽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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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한국 복싱은 전후 국민들의 자긍심을 일깨운 전통적인 효자 종목이었다. 다른 선진국들이 ‘고급 스포츠’에 매달릴 때, 내세울 게 없었던 우리는 오직 주먹 하나로 승부를 겨루는 복싱에서 많은 스타들을 배출했다.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었고, 많은 국민들에게 짜릿함과 자신감을 일깨워주는 종목이기도 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수안이 동메달을 따면서 한국의 올림픽 역사상 두 번째 메달을 안긴 종목이 바로 복싱이었다.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는 강준호가 동메달, 1956년 멜버른 대회에서는 송순천이 은메달, 1984년 LA 대회에서는 신준섭이 금메달을 목에 걸며 꾸준히 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안방에서 열린 1988년 서울 대회에서는 홈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등에 업고 김광선 박시헌이 나란히 금메달을 따냈다. 복싱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러나 이후 복싱 인구가 꾸준하게 감소하고, 특히 생활 체육이 아닌 엘리트 스포츠의 열기가 식으면서 1988년 서울 대회 이후로는 하나의 금메달도 나오지 않았다. 2024년 파리 대회 이전에 나온 가장 근래의 메달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한순철이 마지막이었다. 남자 복싱은 2020년 도쿄 대회와 2024년 파리 대회에 아예 출전 선수를 배출하지도 못했고, 2024년 파리 대회에 출전한 복싱 선수는 여자부의 두 명(임애지 오연지)이 전부였다. 한국 복싱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누구도 이 험한 운동을 시키길 꺼려했다.

그런 한국 복싱에 단비가 내렸다. 여자 54㎏급의 임애지(25·화순군청)가 값진 동메달을 따면서 한국 복싱의 메달 명맥을 이었다. 2012년 한순철 이후 첫 메달이자, 2012년 런던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여자 복싱의 첫 메달이라는 역사적인 장면이 파리에서 새겨졌다. 2012년 런던 대회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도 출전 선수조차 배출하지 못한 한국 여자 복싱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회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와 2020년 도쿄 대회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한국 복싱도 노메달 신세에서 벗어났다.

아쉽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해 잘 싸웠다. 임애지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준결승전에서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와 맞붙었으나 아쉽게 2-3으로 판정패했다. 1라운드부터 판정에서 뒤졌고, 2·3라운드에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임애지는 아쉬움 속에서도 판정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다. 복싱은 동메달 결정전이 없어 준결승에서 패한 선수는 자동적으로 동메달이 주어진다.

이날 부심 5명 중 임애지의 손을 들어온 부심이 2명이 있었을 정도로 경기 내용 자체는 백중세였다. 그러나 아크바시가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했고, 결국 임애지는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아쉽게 3라운드 경기가 다 지나갔다. 2022년 이스타불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아크바시는 임애지의 공세를 노련하게 피해가며 결국 판정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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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6강전과 8강전을 판정으로 이기고 준결승까지 올라온 임애지였다. 임애지는 16강전에서 타티아나 레지나 지 헤수스 샤가스(브라질)에 4-1로 판정승했다. 이 승리는 한국 복싱 선수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함상명 이후 8년 만의 올림픽 무대 승리였다. 이어 2일(한국시간) 열린 8강전에서는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콜롬비아)에 판정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동메달을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샤가스와 카스타네다는 저돌적인 인파이터 스타일에 가까웠다. 반대로 임애지는 아웃복서 스타일에 가까웠다. 일단 상대의 공격이 들어오면 이를 피한 뒤 카운터를 날리는 전략으로 차근차근 점수를 쌓았다. 상대 공격을 잘 피했고, 오히려 유효타를 날리며 판정을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상대 선수들이 더 많은 공격을 퍼부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임애지의 공격 성공이 더 많았다.

하지만 4강전에서 만난 아크바시는 임애지와 경기 스타일이 유사했다. 여기에 왼손잡이였고 또 신체 조건도 임애지보다 좋았다. 16강전과 8강전에서의 전략으로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크바시는 임애지와 스파링도 해본 적이 있는 상대였다. 임애지는 넘기 쉽지 않은 벽으로 아크바시를 기억하는데, 아크바시 또한 임애지를 잘 아는 만큼 임애지의 장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1라운드는 탐색전이었다. 두 선수 모두 아웃복서 스타일인 만큼 거리를 유지한 채 팔로 상대를 견제하며 쉽게 공격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임애지는 7㎝가 더 아크바시를 공략하기 위해 일정 부분 위험 부담과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크바시는 상대적으로 더 멀리서 주먹을 뻗으며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1라운드에서는 임애지가 2-3으로 뒤진 것으로 나왔다. 임애지로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리드를 확인한 아크바시는 자기 페이스대로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임애지의 공격을 유도하면서 긴 리치를 이용해 유효타를 만드는 전략을 썼다. 임애지의 경기 플랜이 꼬인 가운데 2라운드에서는 1-4로 점수가 더 벌어졌다.

이미 판정에서 앞선 아크바시는 무리하게 달려들 필요가 없었다. 상대 공세를 저지하고 이후 카운터로 점수를 벌었던 임애지로서는 자신의 스타일 대신 일단 달려드는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아크바시가 수세에 몰렸고 임애지가 마지막 힘을 짜내 분전했지만 판정이 뒤집히지는 않았다. 인도·헝가리·에스토니아 출신 부심이 아크바시의 손을 들어주면서 임애지의 올림픽 금메달 도전도 막을 내렸다.

임애지는 경기 후 판정에 승복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후 임애지는 “전략은 상대 선수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안 들어오더라. 내가 상대를 분석한 만큼, 상대도 나를 분석했구나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자신의 생각대로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이어 판정에 대해서는 “판정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고 자책하면서 “원래는 적극적으로 안 하는 게 전략이었는데, 1라운드 판정이 밀려서 적극적으로 들어갔다”고 경기 플랜이 꼬였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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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지는 “그 선수(아크바사)와 스파링할 때마다 울었다. 맞아서 멍도 들고, 상처도 났다. 그래서 코치 선생님께 '쟤랑 하기 싫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고 떠올리면서 “100점 만점에 60점짜리 경기다. 내가 이길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아쉽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다음에는 그 선수가 '애지랑 만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평소 썰렁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다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니 즐거웠다고 털어놨다. 임애지는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재미있더라. 여기서 두 번이나 이겨서 짜릿했다. 오늘처럼 관중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까 짜릿했고, 살면서 언제 이렇게 응원 받을 수 있나 싶더라”면서 “한국은 그런 환경이 없다. 실전에서 더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한국 가면 혼자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다”고 아쉬움과 동기부여를 동시에 밝혔다.

아쉽기는 하지만 한국 여자 복싱 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훈장을 단 임애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복싱을 했다. 원래는 마라톤 선수 출신이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마라톤을 했지만 이후 복싱으로 전향했다. 육상을 했던 경험은 스텝으로 이어졌고, 왼손잡이라는 이점까지 더해져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임애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복싱 선수로서의 길을 걸었다. 학교에는 복싱부가 없어 체육관에서 훈련을 해야 했지만, 훈련을 거르지 않는 노력으로 한국 정상에 선 것에 이어 올림픽 메달까지 따냈다.

그런 임애지는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성과에 멈추지 않는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4년 뒤 열릴 LA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이다. 임애지는 “훈련하다 보면 4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올림픽만 무대가 아니다. 작은 대회부터 우리 선수들은 열심히 한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외에도 많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관심을 부탁했다.

여자 복싱은 처음에는 3체급으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7체급까지 확대돼 남자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여자 체급이 확 늘어난 것에 비해 선수는 부족해 저변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만큼 전략적으로 여자 복싱을 키운다면 올림픽 메달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임애지도 그런 케이스다. 임애지의 동메달이 복싱 부흥과 저변 확대, 그리고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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