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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후보’ 도경동이 ‘맏형’ 구본길에 “정신 차려요”… 소통 펜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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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 올림픽]

男펜싱 사브르 단체 올림픽 3연패

8강 부진 구본길, 대체 투입 요청… 도경동 “형 자신있게” 용기 북돋워

결승전 한 점차 리드 위기 맞았지만… 도경동, 투입 8초만에 폭풍 5득점

‘끝까지 믿어주는 팀워크’ 결국 결실

동아일보

연속 5점 따낸 도경동의 포효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 도경동이 1일 파리 올림픽 단체전 결승전 헝가리와의 경기에서 득점한 뒤 포효하고 있다. 파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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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정신 차려요. 뭐 하는 거예요.”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 도경동(25)은 한국 시간으로 지난달 31일 열린 파리 올림픽 단체전 8강전 캐나다와의 경기 뒤 라커룸에서 팀의 최고참 구본길(35)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안 되면 제가 언제든 뒤에서 나갈 테니까 자신 있게 뛰어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한국은 캐나다를 45-33으로 꺾었지만 구본길은 8강에서 부진했다. 구본길은 8강전을 마친 뒤 원우영 코치(42)에게 4강전 때는 자기 대신 도경동을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먼저 물었다. 그러자 도경동은 “형, 자신 없어요? 형은 자신 있게 해야 돼요”라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구본길은 펜싱 종주국 프랑스와의 4강전에선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10-7로 리드를 넘겨받아 3라운드에 피스트에 오른 구본길은 내리 5점을 뽑으며 15-7로 점수 차를 벌렸다. 구본길의 연속 5포인트로 한국은 기세를 탔다. 한국은 안방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프랑스를 결국 45-39, 6점 차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구본길은 “동생들이 ‘형! 끝까지 한 번 더 해 봐요’ 하면서 나를 끝까지 믿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프랑스 관중의 야유고 뭐고 간에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오로지 내 뒤엔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한국 시간으로 날을 넘겨 1일 오전 열린 헝가리와의 결승전. 이번엔 ‘비밀 병기’ 도경동이 해결사 역할을 하며 한국의 3연패에 큰 힘을 보탰다. 사브르 단체전 대표팀은 4명이다. 8강전과 4강전엔 개인전 세계 랭킹이 높은 오상욱(1위) 구본길(22위) 박상원(23위)이 출전했다.

후보 선수인 도경동(75위)은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결승전에서 헝가리에 30-29, 한 점 차로 쫓기던 6라운드에 구본길과 교체돼 이번 대회 처음으로 피스트에 올랐다. 오상욱, 구본길, 박상원과 달리 도경동은 파리 올림픽 개인전 출전 티켓도 얻지 못했다.

도경동은 헝가리의 라브 크리스티안을 향해 칼을 겨누자마자 순식간에 5점을 뽑으며 35-29로 달아났다. 도경동이 5점을 얻는 데 걸린 시간은 8초. 도경동은 프랑스와의 4강전이 끝난 뒤 “뛰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했었는데 출전 기회를 얻자 ‘물 만난 고기’처럼 빛을 발하며 ‘신 스틸러’로 등극했다. 원 코치는 도경동의 결승전 활약을 두고 “나도 소름이 돋았다. 미치는 줄 알았다”며 “경동이가 피스트로 올라갈 때 손가락질을 딱 하면서 자기를 믿으라고 하더라. 그걸 보고 ‘오케이, 됐다’ 싶더라”고 말했다. 작년 4월 입대해 국군체육부대 소속인 도경동은 10월 전역 예정이었는데 올림픽 금메달로 전역 시기를 두 달가량 앞당기게 됐다.

구본길은 이날 결승전 승리로 한국의 올림픽 단체전 3연패 금메달을 모두 갖게 됐다. 구본길은 한국이 2012년 런던,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우승할 때도 사브르 대표팀이었다. 구본길은 결승전이 끝난 뒤 올림픽 무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올림픽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1년은 무조건 쉴 것이다. 이제 집에 가서 육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구본길은 아내가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구본길은 “이제 목표는 나고야다.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2년 뒤인 2026년에 일본 나고야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구본길은 그동안 아시안게임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6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1개를 더 추가하면 한국 선수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파리=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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