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화이트삭스 에릭 페디가 27일(한국시각) 미국 시카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엘에이(LA) 다저스와 안방 경기에 선발 등판해 공을 던지고 있다. 페디는 이날 1회초 오타니 쇼헤이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맞는 등 6이닝 5피안타 1볼넷 5탈삼진 4실점의 투구를 보여줬다. 시카고/유에스에이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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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페디(31)는 지난해 엔씨(NC) 다이노스 소속으로 KBO리그를 평정했다.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투수 3관왕(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을 달성했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상과 투수 골든글러브도 독차지했다.
페디는 KBO리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갔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2년 1500만달러(208억원) 계약을 안겨줬다.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안착한 메릴 켈리가 첫 메이저 계약이 2년 550만달러였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좋은 계약이었다.
화이트삭스의 선택은 적중했다. 페디는 17경기 등판, 5승3패 평균자책점 3.23을 기록하고 있다. 27일(한국시각) 엘에이(LA) 다저스와 경기에서 패전을 당했지만, 그 경기도 6이닝을 소화하면서 시즌 100이닝을 넘어섰다(100⅓이닝).
세부지표도 준수하다. 투수의 운을 헤아려 보는 지표 중 하나는 에프아이피(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다. 수비를 배제한 투수의 평균자책점이다. 투수가 직접 관리할 수 있는 탈삼진과 볼넷, 피홈런만 계산에 반영된다. 수비는 투수가 제어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투수 개인 능력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평균자책점에 비해 FIP가 ‘지나치게’ 높으면 여러모로 운이 따랐다고 해석한다.
페디는 이 괴리감이 크지 않았다. FIP 3.57은 평균자책점 3.23보다 높지만, 합격점을 줘도 무방한 수치다. 참고로 페디는 KBO리그에 오기 전 이 FIP도 좋지 않았다. 2020~2022년 도합 FIP가 5.10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300이닝 이상 던진 76명 중 최하위였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대중화된 지표는 승리기여도(Wins Above Replacement)가 있다. 대체 선수 대비 얼마나 많은 승리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페디는 ‘팬그래프닷컴’ 승리기여도가 2.2로 아메리칸리그 공동 8위다. 페디와 함께 승리기여도 2.2를 기록한 두 명의 투수가 코빈 번스(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로건 길버트(시애틀 매리너스)다. 번스는 2021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길버트는 올해 당장 사이영상에 도전하는 투수다. 물론 승리기여도가 같다고 해서 페디가 두 선수와 같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선수와 비슷하게 팀에 공헌하는 투수가 된 것만으로도 페디의 달라진 입지를 실감할 수 있다. 참고로 페디가 거둔 승리기여도를 돈으로 환산하면 1710만달러(238억원) 정도다. 첫 해에 이미 계약 총액을 넘어선 활약을 펼친 것이다.
KBO리그 엔씨(NC) 다이노스 시절의 에릭 페디.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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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디가 KBO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위퍼’였다. 스위퍼는 슬라이더보다 수평 움직임이 더 큰 구종이다. KBO리그에서 1할대 피안타율을 기록한 이 스위퍼가 메이저리그에서도 페디의 주무기다. 성적이 70타수 13안타, 피안타율 0.186다. 여기에, 왼손 타자에게 주로 던지는 체인지업도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피안타율 0.202). 스위퍼는 페디가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던지지 않았던 구종, 체인지업은 가장 적게 던진 구종이었다. 2022년 체인지업 비중이 3.6%였지만, 올해는 19.9%로 많이 늘어났다. KBO리그 경험을 발판삼아 달라진 모습을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화이트삭스의 사정이다. 올해 화이트삭스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팀 성적 21승61패, 승률 0.256는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다. 포스트시즌은 이미 물 건너갔다. 이로 인해 트레이드 마감시한에 맞춰 주축 선수와 유망주를 바꾸는 행보가 예상된다. 그리고 화이트삭스가 보낼 후보 중 한 명이 바로 페디다. MLB 소속 기자 마크 파인샌드도 페디를 트레이드 후보 13인 중 한 명으로 언급하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밀워키 브루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행선지로 꼽았다.
만약 실제로 트레이드가 일어난다면 페디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포스트시즌을 넘보는 팀이 페디를 원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주가를 더 높일 수 있다. 지금처럼만 한다면 대형 계약은 시간문제다.
이처럼, 페디는 메이저리그에 돌아올 때보다 더 많은 팀이 지켜보는 투수가 됐다. ‘마산 사나이’ 페디가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pbbl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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