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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나의 영웅·아버지 보고있나요”…디섐보, 하늘에 바친 US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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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4년 만에 US오픈 정상에 오른 디섐보. 그의 우상인 페인 스튜어트를 추모하는 뜻에서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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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슨 디섐보(31·미국)의 별명은 ‘필드 위의 과학자’다. 미국 텍사스주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필드에서도 과학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회를 앞두고는 골프공을 소금물에 담근 뒤 무게 중심이 가운데에 있는 공만을 골라낸다. 모든 아이언의 길이가 똑같은 ‘싱글 랭스 아이언’을 사용해서 재미를 본 적도 있다. 즉, 모든 아이언의 길이를 8번 아이언과 같은 36.5인치로 맞춘 뒤 로프트만 바꾸는 방식이다.

디섐보가 17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골프장 2번 코스(파70)에서 열린 제124회 US오픈 골프 대회에서 합계 6언더파 274타로 우승했다. 지난 2020년 미국 뉴욕주 윙드풋 골프장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4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다. 우승상금은 430만 달러(약 60억원). 끝까지 경쟁을 펼쳤던 로리 매킬로이(35·북아일랜드)는 18번 홀(파4)에서 짧은 거리의 파 퍼트를 놓치면서 합계 5언더파를 기록,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디섐보와 매킬로이의 대결은 LIV 골프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디섐보는 지난 2022년 PGA 투어를 떠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LIV 골프에 합류했다. 반면 매킬로이는 어떤 제안에도 흔들리지 않고 타이거 우즈와 함께 PGA 투어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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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킬로이에 3타 앞선 채 챔피언 조에서 마지막 날 경기를 시작한 디섐보는 쉽게 달아나지 못했다. 전반 4번 홀(파5)에서 보기를 범해 1타를 까먹었다. 반면 앞 조의 매킬로이는 전반 버디 2개와 보기 1개를 기록해 디섐보를 1타 차이로 추격했다. 매킬로이는 특히 12번 홀(파4)에서 8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합계 7언더파 공동선두로 뛰어올랐다. 반면 디섐보는 이 홀에서 보기를 적어내면서 1타 뒤진 2위로 내려앉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다. 이어진 후반 경기에서 매킬로이는 버디 1개와 보기 2개로 주춤했고, 디섐보는 버디 1개와 보기 1개로 타수를 유지하면서 둘은 17번 홀(파3)까지 6언더파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승부는 마지막 18번 홀에서 갈렸다. 그린을 놓친 매킬로이는 침착한 어프로치로 홀 1.14m 거리에 공을 붙인 뒤 파 퍼트를 했다. 그러나 공이 컵 오른쪽을 돌아 나왔다. 뼈아픈 보기. 마지막 조의 디섐보는 티샷을 왼쪽으로 당겨친 뒤 두 번째 샷마저 벙커에 빠뜨렸지만, 완벽한 벙커샷으로 공을 핀 가까이에 붙였다. 이어 1.19m 거리에서 파 퍼트를 성공한 뒤 그린 위에서 포효했다.

한국 선수 중에선 김주형(22)이 합계 6오버파 공동 26위, 김시우(29)가 7오버파 공동 32위를 차지했다. 이날 발표된 남자골프 세계랭킹에서 김주형은 26위, 안병훈(33)은 27위를 기록해 7월 개막하는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 브라이슨 디섐보는 …

◦ 생년월일 : 1993년 9월 16일

◦ 신장·체중 : 1m85㎝·106㎏

◦ 출신교 :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 프로 데뷔 : 2016년

◦ 통산 우승 : PGA 투어 9회, LIV 골프 2회

◦ 평균 비거리 : 320야드

◦ 별명 : 필드 위의 과학자, 괴짜 골퍼

2016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디섐보는 이번 대회까지 PGA 투어에서 통산 9승을 거둔 실력파다. 평균 320야드의 폭발적인 드라이브샷 을 앞세워 브룩스 켑카(34), 카메론 챔프(29·이상 미국) 등과 함께 장타자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날 세르히오 가르시아(44·스페인) 등 LIV 골프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은 디섐보는 1999년 작고한 프로골퍼 페인 스튜어트의 이름을 연거푸 외쳤다. 디섐보의 서던 메소디스트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스튜어트는 1999년 6월 이곳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넉 달 뒤인 1999년 10월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튜어트를 우상으로 여기는 디섐보는 선배를 따라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또 이날 스튜어트의 상징인 헌팅 캡을 쓰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외쳤다.

“페인이 바로 여기 있다!”

디섐보는 또 우승을 확정한 뒤 2년 전 당뇨병 합병증으로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투병하다 숨진 아버지를 기리며 눈물을 흘렸다.

◆릴리아 부, LPGA 투어 우승=이날 미국 미시간주 벨몬트의 블라이더필즈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마이어 클래식에선 릴리아 부(27·미국)가 연장전 끝에 우승했다. 부는 합계 16언더파로 렉시 톰슨(29·미국)과 그레이스 김(24·호주)과 동타를 이룬 뒤 세 번째 연장전에서 버디를 잡아내 승부를 결정지었다. 우승상금은 45만 달러(약 6억2500만원). 한국 선수들은 올 시즌 개막 이후 15개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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