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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일사일언] 우리 삶이 곧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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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한국이 가장 많이 수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섬유가 무려 40.9%를 차지했다. 이어 합판이 11%로 2위. 그런데 아주 근소한 차이로 3위를 한 품목이 있다. 바로 가발이다.

본래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가발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최대 수입국인 미국이 1965년 베트남 전쟁 당시 중국이 북베트남을 지원하자, 중국의 인모 수입을 중단했다. 새로운 공급처로 물망에 오른 한국은 1967년 가발 산업을 수출 전략산업으로 지정하며 세계적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이 가발 수출의 전진기지가 서울의 구로공단이었다. 가발뿐만 아니라 의류, 완구 등 당시 한국의 주력 수출품들이 모두 구로공단에서 만들어졌는데, 10억달러를 달성한 1971년 수출액의 10%나 차지했다. 1985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동맹 파업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현 장년, 노년 세대의 땀과 눈물이 모두 담겨 있는 곳이다.

급격한 경제발전과 도심 개발로 인해 이제는 구로공단의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여공들의 열악한 거주지, 소위 ’벌집(쪽방)’도 화려한 빌딩과 아파트로 바뀐 지 오래다. 지난 2021년 서울시에서 개관한 G밸리산업박물관에서 디지털로나마 만날 수 있을 뿐이다.

20세기 후반, 전후 세대가 이끈 한국 경제개발의 흔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다. 때마침 지난 17일 국가유산청이 출범하면서 ‘문화재’를 ‘국가유산’으로 바꾸었다. 국가유산의 재화적 가치보다 세대 간 계승과 발전에 초점을 맞춘 행보다. 동시에 오래된 유적과 유물뿐만 아니라 근현대 기억과 공간도 유산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조금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많은 우리의 삶, 국가유산이 있다.

[김지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선임전문관(하버드대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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