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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 (금)

'녹슬지 않는 탱크' 최경주 … 54번째 생일에 우승 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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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최경주가 19일 제주 핀크스GC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2차 연장전에서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다. K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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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코리안 탱크' 최경주(54)가 지난 17일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 오픈 2라운드에서 2위에 6타 앞선 단독 선두로 마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최종 라운드가 열린 19일은 다름 아닌 최경주의 54번째 생일이었다. 마침 한국에서 12년 만에 우승 기회까지 잡았으니 최고 생일을 기대해 볼 만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12년 만의 우승이자 최고령 우승 기록'이라는 달콤한 선물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9일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4라운드. 2위 그룹에 5타 앞서 출발한 최경주는 이날 보기 5개와 버디 2개로 3타를 잃은 뒤 박상현과 돌입한 2차 연장전에서 극적으로 파를 잡아내며 한국 남자골프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그야말로 최경주의 우승을 향한 집념에 하늘이 도왔다. 최경주는 1차 연장전에서 두 번째 샷이 일명 '뒤땅'이 나오며 짧아 그린 앞 개울에 빠진 듯 보였다. 그런데 극적으로 개울 한가운데 섬과 같은 지역에 살아 있었다. 게다가 공 위치가 발을 놓을 자리가 좋은 곳이었다. '골프의 신'이 도왔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498경기를 뛴 베테랑 최경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홀 옆 60㎝에 붙인 뒤 천금 같은 파를 잡아내 승부를 2차전으로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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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오른쪽)가 SK텔레콤 오픈 1차 연장에서 친 두 번째 샷이 극적으로 살아남은 '섬'에서 캐디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K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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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는 "연장전의 '아일랜드 샷'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말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었는데 몸은 계속 부담이 와서 더 간절해진 것 같다. 그래서 그 섬이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위치에 있던 것이 믿기지 않는다. 정말 극적으로 우승했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이어 "이 작은 섬에 'KJ CHOI 아일랜드'란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이어진 연장 2차전. 최경주가 혼신의 힘을 다해 친 드라이버샷은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떨어졌고 두 번째 아이언샷도 그린 위에 올려놓은 뒤 두 번의 퍼트로 파를 잡아냈다. 반면 박상현은 균형을 잃은 듯 티샷이 왼쪽 러프에 빠졌고 두 번째 샷은 짧았다. 그리고 보기.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승부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최경주는 "정말 큰 성원 속에서 이렇게 우승하게 됐는데 기쁘고 이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후배 선수들에게 고맙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힘이 난다. 후배 선수들도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이 코스를 정복하고 싶어 했고, 계속 도전하면서 경기했다. 이 도전 속에서 분명 배운 것이 많았을 것"이라며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단순히 우승 때문에 최경주가 기쁜 것이 아니다. 이날은 그가 2라운드를 마치고 말한 것처럼 1970년 5월 19일생인 최경주의 54번째 생일이다. 우승 상금 2억6000만원과 부상, 대형 트로피는 최고의 생일 선물이 됐다. 주최 측에서는 커다란 생일 케이크를 서울에서 공수했다.

이와 함께 최경주는 2005년 '영원한 현역' 최상호가 KT&G 매경오픈에서 50세4개월25일의 나이로 세운 '한국 남자골프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더 놀라운 점은 최경주는 호적상 1970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68년생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56세 생일에 차지한 우승이다.

최경주는 "국내에서 우승했을 때 오늘처럼 이렇게 감정이 벅찬 적이 없었다"며 "이번 우승이 정말 기쁘고 앞으로 내 자신의 발전과 함께 삶을 확실히 변화시킬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우승으로 1994년 프로골프 무대에 뛰어든 이후 프로 통산 30승 고지를 밟았고 SK텔레콤 오픈 최다승(4승)에 이어 KPGA 투어에서는 2012년 CJ인비테이셔널 이후 12년 만에 우승을 추가했다. KPGA투어 통산 100번째 출전 경기에서 이룬 통산 17승이다. 프로대회 우승은 2021년 PGA 챔피언스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 이후 3년 만이다.

역도 선수를 꿈꾸다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골프채를 잡았던 '완도 소년'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한국 골프의 역사다. 최경주는 1999년 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에서 공동 35위에 올라 'PGA 투어 첫 한국인'이 됐다. 이어 2002년 뉴올리언스 컴팩 클래식에서 한국인 최초 PGA 투어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고 같은 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도 우승해 '최초의 PGA 투어 다승' 기록도 썼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경주는 2008년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랭킹 5위에 올랐고, 2021년에는 '50세 이상 베테랑'들이 겨루는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한국 골프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실력뿐만이 아니라 '매너'로도 극찬을 받았다. 보통 극도의 긴장감이 감도는 경기 직전에 선수들은 자신의 골프에 몰입하기 위해 집중한다. 하지만 최경주는 대회 시작에 앞서 스코어보드를 들어주는 요원, 경기 진행요원 등 관계자들과 악수하며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처음 맞는 상황에 오히려 진행요원들이 당황했을 정도다.

한국에서 좋은 기운을 받은 최경주의 도전은 이어진다. "내일 출국해 바로 시니어 PGA 챔피언십에 나간다. 이후 격주로 규모가 큰 대회에 나갈 계획"이라고 말한 최경주는 "올해 목표는 상금랭킹 톱10에 들어가는 것이다. PGA 챔피언스 투어도 쉽지 않은 무대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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