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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정몽규 회장, 책임지고 물러나라”… 축구지도자협회 성명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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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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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OUT.”

한국축구지도자협회(회장 설동식)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축구지도자협회는 7일 “축구 지도자들은 지금의 한국축구가 유례없는 대위기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처럼 반복되는 참사의 근본적 원인에는 대한축구협회 회장 및 집행부의 졸속 행정과 오로지 위기만 모면하려는 단기 처방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지난달 28~29일 강원도 강릉에서 임원 워크숍을 개최하고 한국축구의 중장기발전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한국 남자축구가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우연한 결과가 아닌 예고된 참사였다”며 “중장기적 발전 계획은 무시한 채 오직 대표팀 성적에만 급급한 결과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져야 할 책임을 몇몇 지도자에게만 전가하고 있는 축구협회의 무책임한 태도를 규탄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지난 2월 창립총회를 하고 4월 설립허가를 받은 단체다.

■다음은 축구지도자협회 성명서 전문

한국 남자축구가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대회 이후 40년 만이다. 이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닌 예고된 참사였다.

축구 지도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결과를 우려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줄 것을 수차례 협회에 건의했다. 언론도 이미 주먹구구식 대표팀 감독선임 및 운용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경고를 쏟아냈으나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및 집행부는 매번 이런 우려를 묵살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한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올림픽 예선을 한 달 앞두고 치러진 마지막 실전 점검 무대였던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U-23 챔피언십 대회에 출전하였으나 정작 올림픽팀 사령탑이었던 황선홍 감독은 현장에 없었다.

이는 수많은 축구지도자 및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체감한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 출전팀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정보를 집행부에 전달하였음에도, 정몽규 회장은 당시 클린스만호의 대표팀이 국민적 비난여론에 직면하자 이를 무마하고자 올림픽팀 감독을 임시로 A대표팀을 지휘하도록 땜질식 처방을 강행했다. 이런 준비과정의 무사안일로 인한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한국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2013년 취임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체제는 그간 선배, 후배들이 공들여 쌓아 올린 한국축구의 위상과 자긍심을 그의 재임 기간 모두 무너뜨렸다.

정 회장은 몇몇 대표팀의 성과를 본인의 명예와 치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하고 시급한 한국축구의 본질적 문제는 덮어두고 외면해 왔음을 우리 국민과 축구 지도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2023년 축구인에 대한 무리한 사면 결정 발표 뒤 이를 취소하고 사과한 일, 2024년 A대표팀의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요르단에 완패한 뒤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이번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으로 정 회장과 협회 집행부에 대한 계속되는 실수와 졸속 리더십은 이제 평가가 끝났음이 상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축구인 사면은 회장이 최종 재가한 것인데,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애꿎은 축구인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당시 젊고 아까운 젊은 축구인들만 주로 사표를 내야 했다.

또한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에서도 협회 내 시스템이 아닌 오직 정 회장 개인적 친분으로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는 것은 다름 아닌 클린스만 본인이 인터뷰에서 실토한 바 있다. 더구나 외국인 감독이 K리그조차도 관전하지 않고 미국 자택에서 머물며 태만한 근무를 하도록 계약했고, 마침내 선수단 내 내분도 관리하지 못해 역대급 무능한 감독으로 각인된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었다.

우리 축구지도자 일동은 한국축구가 올림픽에 나가지 못해 상심한 축구 팬들의 불만을 지도자 탓으로만 돌리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숨어 있는 정몽규 회장에게 심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2013년 취임 후 현장의 선수, 지도자들은 다양한 목소리로 변화와 개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축구 저변은 더 줄어들었고 현장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이제 한국축구 지도자 일동은 오로지 대표팀 성적에만 의존해 성과와 열매만 취해온 축구협회 지도부를 더는 방관할 수 없다. 그 대표적 사례가 회장 재임 중 치적으로 내세운 ‘21세 이하 저연령 선수의 프로팀 의무출전 제도’와 같은 해괴한 공약이다.

학생 선수들이 프로팀에 등록은 했지만, 선배 선수와 기량과 체력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서 제대로 뛸 수 없으니 23세 이하 선수에게 출전시간을 보장해 준 이 제도는 프로팀에서조차 반대하고 있다. 즉, 최고 실력을 갖춘 프로 무대에서 실력과 관계없이 오직 ‘21세 이하’라는 이유만으로 ‘경기출전이 보장’되는 제도는 기존 프로 선수의 숭고한 땀과 노력을 무위로 돌리는 제도로서 현장의 반발이 심하다. 또한 이런 제도는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제도는 학원 축구 선수층을 고갈시키고 프로의 근간인 아마추어 축구를 붕괴시키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장 축구지도자 및 전문가들은 현 정몽규 회장이 강행하고 있는 ‘21세 이하 선수 의무출전 제도’를 한국축구 발전을 퇴보시키는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한편 정몽규 회장이 취임하기 전 지난 2012년 동메달을 획득했던 런던 올림픽 예선 때는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다. 당시 23세 이하 선수들은 소속 구단에서 의무출전이 아닌 쟁쟁한 선배 프로선수들과 오로지 실력만으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했던 선수들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정 회장의 공약사항이었던 승강제는 현실적 토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일부 K4 팀들은 승격할 경우 승격에 따른 예산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K3 승격을 사실상 포기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원인에는 낙후된 축구 저변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표팀 성적에만 몰두하는 현 집행부의 졸속행정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축구지도자는 정몽규 회장이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

우리 한국축구지도자 일동은 대한축구협회 집행부에 몸담은 일부 축구인들에게도 호소한다. 축구인이 주인이 돼야 할 협회 집행부는 그간 선배 축구인들이 봉사하고 헌신해 온 자리였다. 따라서 잘못된 결과에는 마땅히 책임지고 물러난 멋진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집행부는 40년 만의 역사적 대참사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축구지도자들은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한 간절하고 치열한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대한축구협회 집행부에 대해 분노한다. 또한 사랑하는 후배 축구선수를 위해 고해야 할 직언에는 침묵한 채 자리에만 연연하고 있는 일부 축구인의 이기적 행태에 대해 각성을 촉구한다.

한국축구의 위상은 바로 우리 축구인 스스로가 세워 가야 한다. 더 이상의 방관은 한국축구를 또다시 수십 년 후퇴시킬 뿐이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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