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딸과, 아내와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대한축구협회 초청을 받아 카타르 현지까지 온 가족들의 응원 속에 힘을 내고 있다. 황희찬은 가족의 격려 속에 부상을 딛고 일어났고, 김진수는 어린 딸과 아내의 응원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으며, 신혼인 조유민은 아내의 응원 속에 감격의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왼쪽 사진부터). 황희찬 가족 제공, 김진수 SNS·조유민 아내 SNS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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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여명 카타르로 처음 초청
김진수 “딸에게 멋진 모습을”
손준호 “지친 줄 모르고 뛰어”
벤치 머물던 새신랑 조유민
아내 응원받고 감격의 데뷔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도하의 기적’을 쓴 벤투호는 승승장구의 비결을 서로를 믿는 조직력이라 말한다. 포르투갈 출신인 파울루 벤투 감독(53)이 선임된 이래 4년을 넘게 같은 선수들이 동고동락하다보니 카타르라는 대양을 잘 헤쳐나갔다는 얘기다.
‘캡틴’ 손흥민(30·토트넘)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우리는 정말 가까운 사이”라며 “경기를 뛰는 선수도 뛰지 못하는 선수도 모두 한마음”이라고 자신있게 소개했다.
선수들이 믿고 기대는 버팀목은 진짜 가족이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가 타지에서 외롭게 싸우는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려 이번 대회에 처음으로 선수단 가족을 초청한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선수단이 머무는 르메르디앙 호텔 근처에 숙소(객실 3개)와 경기 티켓(1등석 4장)을 제공했는데, 110명 안팎의 가족이 카타르까지 날아왔다.
선수들이 가족과 직접 만난 것은 대회 기간 단 이틀의 휴식일(11월20일·12월3일)이 전부였지만 이 만남은 지친 선수들의 회복을 돕는 힐링 타임이 됐다. 선수들은 가족과 같은 장소와 시간대에서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느낌이 남달랐다. 휴식일에 가족끼리 함께 응원을 다니거나 여행하면서 다지는 친분이 선수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가족을 초청하는 데 협회도 선수도 적잖은 비용이 발생했다. 그래도 긴 대회 기간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게 익숙했던 선수들이 달라진 환경에 함박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효과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 차이가 오롯이 드러난 것이 바로 첫 경기였던 지난달 24일 우루과이전이었다. 한국은 월드컵 무대에서 직전까지 2전 전패로 천적에 가까운 우루과이에 부담을 느꼈는데, 큰 대회가 처음인 선수들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상대와 팽팽하게 맞서며 0-0 무승부를 거뒀다. 과거 부상으로 두 차례 월드컵에서 낙마해 늦깎이 데뷔전을 치른 수비수 김진수(30·전북)는 “아내와 딸이 보고 있으니 힘이 났다. 네 살 딸에게 아빠가 월드컵에서 멋지게 뛰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첫 경기가 끝나니 애는 자고 있더라”며 웃었다. 역시 첫 월드컵이었던 미드필더 손준호(30·산둥)도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딸이 보고 있었다. 가족 앞에서 내가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지친 줄도 모르고 뛰었다”고 말했다.
가족은 벤치에 머무는 백업 선수들이 기회를 잡아낼 힘이기도 했다. 우루과이전에서 교체 투입된 골잡이 조규성(24·전북)이 외모로 인기를 끌자 부모님이 “이제는 골로, 축구 실력으로 떴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는데, 지난달 28일 가나와의 2차전(2-3 패)에서 선발로 출격해 거짓말처럼 골 폭죽을 터뜨린 것이다. 조규성의 가나전 멀티골은 한국 축구 월드컵 도전사에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지난달 혼인신고한 새 신랑 조유민(26·대전)은 웬만하면 1분도 뛰기 어려운 4번째 수비수였지만 “내 힘 다 줄게”라는 걸그룹 티아라 출신의 아내 소연의 응원 속에 3일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최종전(2-1 승)에서 감격의 데뷔전을 치렀다.
대회 기간 내내 벤투호를 괴롭혔던 부상 문제도 가족이 아니었으면 극복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측면 날개인 황희찬(26·울버햄프턴)은 대회 시작 전부터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 통증에 신음해 첫 2경기를 건너뛰었다.
가족 앞에서 자신의 첫 골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얼음통에 몸을 던진 끝에 포르투갈전에서 도하의 기적을 완성하는 결승골을 터뜨렸다. 황희찬은 “내가 또 다쳐도 괜찮다. 가족 나아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선수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반대로 선수들이 더 다치지 않기만 바랄 따름이다. 황희찬의 아버지 황원경씨는 “힘든 시간을 보내던 아들이 스스로 극복해 고맙다. 그래도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해도 괜찮으니 더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응원하는 게 우리 가족 아닌가”라고 말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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