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런 저지(뉴욕 양키스)가 29일(한국시각)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2022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경기 7회초 무사 1루에서 좌월 투런 홈런을 터뜨린 뒤 베이스를 돌고 있다. 저지의 시즌 61호 홈런으로 역대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을 쳐냈던 로저 매리스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토론토/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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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애런 저지(30)의 시대다. 메이저리그가 저지의 기사와 영상으로 도배됐다. 심지어 다른 종목을 중계하는 방송사도 저지의 타석이 되면 화면을 분할해서 내보낸다. 메이저리그를 보고 있지 않아도, 저지만큼은 보고 있는 것이다.
저지는 주목받는 삶이 익숙했다. 저지가 태어난 캘리포니아주 린든은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곳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컸던 저지는 쉽게 눈에 띄는 아이였다. 주민들은 저지의 이름은 몰라도 ‘키가 큰 아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1992년 4월에 태어난 저지는 출생 직후 백인 교사 부부에게 입양됐다. 부모님과 피부색이 다른 것을 의심했을 때,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았다.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울 수 있었지만, 저지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어머니는 저지가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저지는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참고로 저지에게는 한국에서 입양된 형도 한 명 있다.
뛰어난 체격 조건을 갖춘 저지는 고교 시절 세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야구와 농구, 미국 프로풋볼이었다. 프로풋볼은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원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저지는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프레즈노대학교에 진학해 야구에 전념했다. 그곳에서 저지는 외야수로 변신해 프로 무대에 진출할 준비를 했다.
저지는 나날이 성장했다.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뽑힐 재목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키(2m01)가 많은 팀을 고민에 빠뜨렸다. 키 2m가 넘는 야수가 성공을 거둔 사례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지를 지명한 팀은 양키스였다. 양키스는 201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2순위로 저지를 뽑았다. 드래프트를 주관했던 담당자는 “큰 키가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운동 신경이나 마음가짐 같은 장점들이 더 부각됐다”고 덧붙였다.
양키스의 선택은 탁월했다. 저지는 빠르게 마이너리그를 졸업하고 메이저리그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7년,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50홈런을 정복한 신인 타자로 등극했다. 52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도 차지했다. 당시 데릭 지터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고 있던 양키스는 저지의 등장에 반색했다. <뉴욕타임스>도 ‘양키스 역사에 다음 페이지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저지는 단숨에 뉴욕의 황태자가 됐다.
저지는 2017년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이후 높이 날지는 못했다. 저지의 날갯짓은 매번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큰 키 탓에 부상 빈도가 잦았다. 건강하면 뛰어난 타자였지만, 건강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2018년에는 50경기, 2019년에는 60경기를 놓쳤다.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2020년(28경기)에도 절반 넘게 뛰지 못했다.
부상 그늘에서 벗어난 건 지난 시즌이었다. 오랜만에 규정 타석을 채운 저지는 다시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올해는 지난 시즌을 발판 삼아 개인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저지는 단일 시즌 60홈런을 때려낸 역대 6번째 선수가 됐다. 이 가운데 금지약물 의혹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1927년 베이브 루스와 1961년 로저 매리스, 그리고 올해 저지뿐이다. 저지는 청정 기록으로 여겨지는 1961년 매리스의 61홈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단일 시즌 양키스 최다 홈런 기록이자,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이제 저지는 매리스를 넘어 아메리칸리그 홈런 새 역사에 도전한다.
저지는 현재 홈런뿐만 아니라 타율(0.313)과 타점(130개)도 리그 1위에 오르면서, 트리플 크라운 달성도 가시권에 있다. 양키스 애런 분 감독은 “경이로운 시즌”이라며 감탄했고, 동료 게릿 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놀라워했다.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는 저지와 비슷한 수준의 타자도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저지의 홈런을 바라고 있지만, 저지는 홈런에 집착하지 않는다. 저지에게 우선 순위는 항상 팀의 승리였다. 지금도 나쁜 공은 철저하게 골라내면서 상황에 맞는 팀 배팅으로 자신의 욕심은 뒤로하고 있다. 이러한 절제와 겸손이 오늘날 저지가 탄생한 비결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의 도전을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창섭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pbbl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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