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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미국의 4대 메이저 종목 가운데 가장 먼저 커미셔너 제도를 도입한 것은 메이저리그(MLB)로 1920년이다. 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WS) 져주기 경기, 이른바 블랙삭스 스캔들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연방판사 출신 케니소 마운틴 랜디스를 영입했다. 랜디스는 추상같은 명령으로 MLB를 정화했다.
초대 커미셔너 랜디스는 현직에서 사망할 때인 1944년에 물러났다. MLB 최장수 커미셔너다. 그는 사망과 동시에 명예의 전당에 추대됐다. 미국야구기자단(BBWAA)은 랜디스의 업적을 기리면서 MVP를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 어워드’라고 했다. 그러나 랜디스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BBWAA는 이를 삭제했다.
MLB는 랜디스를 시작해 현 롭 맨프레드까지 9명의 커미셔너가 역임했다. 이 가운데 5명이 야구 명예의 전당에 추대됐다. 커미셔너로서 야구발전을 인정했다. 단기 임기로 끝나지 않는 한 명예의 전당행이 보장된 셈이다.
명전에 추대되지 못한 커미셔너는 공군 중장 출신 윌리엄 에커트, 전 LA올림픽 조직위원장 출신 피트 위베로스, 페이 빈센트, 임기중 사망한 바트 지아마티, 현직의 맨프레드 등이다. 에커트, 위베로스, 빈센트 등 3명은 다른 커미셔너에 비해 임기가 짧다. 예일대 총장 출신 지아마티는 1년 재임기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대 종목 커미셔너들은 업무 능력에 따라 장수가 기본이다. 구단주들은 리그 이익과 노사단체협약이 순조롭게 이행되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한다. 커미셔너는 구단주들이 뽑는다. KBO는 사실상 구단 사장들이 뽑는다. MLB를 흉내냈던 총재가 어느날 사장급으로 강등된 것이다.
MLB 커미셔너로 구단주들의 불신임을 받은 유일한 이가 페이 벤센트다. 선수편에서 업무를 봤다고 구단주들이 들고 일어선 것. 빈센트는 1992년 사임했다. 그 뒤를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였던 버드 실릭이 대행을 맡고 1998년부터 공식 커미셔너가 됐다. 실릭은 초대 랜디스 이후 1992년~2015년까지 23년 최장수 커미셔너였다.
4대 종목 현직 커미셔너들은 대체로 장수하고 있다. NHL 개리 배트맨은 1993년부터 커미셔너를 맡고 있다. 30년째다. 직업이 커미셔너인 셈. NHL은 배트맨 이전에는 회장(President) 제도였다. 배트맨은 변호사 출신이다.
최고 인기 종목이며 연봉도 4000만 달러가 넘는 NFL의 로저 구델은 2006년부터 맡고 있다. NFL은 역대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구단주들이 구델 커미셔너를 교체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NFL을 최고 스포츠 반석으로 올려 놓은 이는 피트 로젤(1960-1989년 재임)이다. 로젤은 LA 램스 홍보맨으로 출발해 제네널매니저를 거쳐 NFL 수장에 오른다. NFL 방송중계권료의 새 지평을 연 인물이다.
NBA 에덤 실버 커미셔너는 2014년 ‘리그의 독재자’로 통했던 데이비드 스턴의 뒤를 이었다. 강력한 리더십의 스턴은 NBA를 현 30개 구단 체제로 만든 커미셔너다. 30년을 재임했다. 역시 변호사 출신인 실버는 스턴 밑에서 부 커미셔너를 맡은 뒤 총수 자리까지 올랐다.
커미셔너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리더십이다. 구단주들이 커미셔너를 선택하지만 그 자리에 오르면 커미셔너십으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KBO 정지택 전 총재는 구단들의 선택도 잘못됐지만 리더십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구시대적인 권위만 돋보였을 뿐이다. 새 총재는 구단 이기주의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가장 힘든 업무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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