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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50세에 자신을 구원한 스티븐 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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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0세가 되자마자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약 중인 스티븐 알커. [USA투데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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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되자 그의 클럽은 요술봉이 됐다. 뉴질랜드 출신의 프로 골퍼 스티븐 알커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세 시즌을 보냈다. 가장 좋은 성적이 17등이었으니 사실상 돈만 날렸다. 유럽, 미국 2부 투어에서 주로 뛰었다.

알커는 지난 시즌 미국 2부 투어에서 15번 컷 탈락했고, 톱 10에 딱 한 번 들어갔다. 50세까지 2부 투어에서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하다. 이 투어는 거리 괴물들의 리그인데 알커의 드라이브샷 평균 거리는 283야드로 거의 꼴찌인 153위였다. 아이 둘이 있는 이 중년 사내에게 미래는 없어 보였다.

생일이 지나고, 새로운 무대에서 그는 다른 사람이 됐다. 7월 말 만 50세가 되자 챔피언스 투어에 참가할 자격이 됐다. 조건이 된다는 말이지, 출전권을 준다는 말은 아니다. 알커는 놀랍게도 8월 초 열린 보잉 클래식에서 월요 예선을 통해 참가권을 얻은 뒤 공동 7위에 올라 다음 대회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알커는 그다음 대회에서 3위, 그다음 대회 9위 등 6개 대회 연속 톱 10에 들었다. 그러면서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따냈다.

챔피언스 투어는 PGA 투어에서 활약하던 왕년의 스타들이 주도한다. 최근 필 미켈슨, 어니 엘스, 최경주, 짐 퓨릭 등 뛰어난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다. 알커는 보란 듯 플레이오프 두 번째 대회인 팀버테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알커는 아르바이트로 석유회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카펫 세탁도 했다. 그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열정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집중하고 태도를 올바르게 하면 상황이 좋아질 수 있다. 다른 스포츠건, 인생의 어떤 것이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20여년간 잠잠하던 알커가 갑자기 좋아진 이유는 무얼까. 거리 차이가 덜 나는 선수들과 경쟁해서 마음이 편해진 것이 하나, 새로운 자극이 다른 하나다. 그는 “베테랑 베른하르트 랑거가 야디지 북을 들고 5시간 30분 동안 코스를 살피는 것을 보고 놀랐다. 노력과 순수한 헌신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랑거는 64세다. 코스를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 그런데도 새내기처럼 코스를 공부했다.

챔피언스 투어에선 가뭄에 콩 나듯 패자부활전을 통한 승자의 얘기가 나온다. 10대 때 골프 선수를 하려다 안 돼 포기하고 26세부터 18년간 맥주 트럭을 운전하던 마크 존슨은 2005년 시니어 투어에서 우승했다. 맥주 트럭을 몰고 골프장에 나타난다 해서 ‘비어맨(beer man)’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난 시즌 알커는 8만 달러를 벌었는데 챔피언스 투어 10개 대회에서 약 120만 달러(14억원)를 벌었다. 그는 “돈도 중요하지만, 내년 출전권을 얻은 것은 나 자신을 구원할 기회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뉴질랜드 해럴드는 “가장 희박한 구원 이야기”라고 썼다.

미국 미디어들은 알커의 성적에 대해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평했다.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이전에 없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익숙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알커의 패자부활전 승리가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요술봉이 무뎌져 다시 카펫을 닦는다고 해도 그는 인생의 구원을 이미 얻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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