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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현우 칼럼니스트] 류현진(34·토론토 블루제이스)이 후반기 첫 등판에서 완벽에 가까운 투구로 에이스의 부활을 알렸다.
류현진은 지난 19일 미국 뉴욕주 버팔로 세일런필드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 7이닝 동안 3피안타 무실점 1볼넷 4탈삼진을 기록하며 완봉승을 거뒀다(메이저리그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지난해부터 더블헤더 경기에 한해 7이닝으로 치르고 있다). 경기 후 류현진의 2021시즌 성적은 9승 5패 평균자책점 3.32가 됐다.
이날 류현진의 투구에 있어 표면적으로 돋보였던 변화는 '구속 상승'이다. 류현진은 패스트볼 구속이 최고 93.마일(150.2㎞/h) 평균 90.8마일(146.1㎞/h)을 기록했다. 이는 토론토 이적 후 가장 빠른 패스트볼 구속이다. 하지만 이날 류현진의 구종 가운데 가장 큰 구속 변화를 보인 구종은 따로 있었다. 바로 주무기 체인지업이다.
이날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최고 85마일(136.8㎞/h) 평균 83마일(133.6㎞/h)에 달했는데, 이는 시즌 평균인 79.3마일(127.6㎞) 대비 3.7마일(약 6㎞/h)나 빨라진 수치다. 이런 류현진의 체인지업 구속 상승은 많은 메이저리그 팬의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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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대로 체인지업의 목적은 '패스트볼과 비슷한 투구폼'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공'을 던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따라서 체인지업은 일반적으로 패스트볼과 구속 차이가 클수록 더 위력적이다. 그러나 이날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달랐다. 패스트볼과 구속 차이가 줄었음에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피안타율 0.111(1/9) 헛스윙률 41%(7/17)이란 압도적인 성적을 올렸다.
체인지업은 단연 류현진을 대표하는 구종이다. KBO리그 데뷔 첫 해였던 2006년, 팀 선배인 구대성에게 체인지업을 전수받은 류현진은 단시간 안에 이를 자신만의 구종으로 완성시키면서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이후 체인지업은 2014시즌을 제외하면 류현진의 다양한 구종 가운데서도 언제나 1순위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올 시즌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이전만큼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 전반기 류현진의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256. 얼핏 준수해보일 수도 있으나 지난해(0.185) 대비 0.071이나 높아진 수치였다. 헛스윙 비율 역시 지난해 30.6%에서 20.7%로 10% 가까이 하락했다. 이는 류현진이 6월 5일부터 7월 2일까지 6경기에서 2승 3패 평균자책(ERA) 5.35로 부진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시즌 초반 류현진표 체인지업의 위력이 예전같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류현진은 19일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불펜 피칭을 하면서 피트 워커 투수코치님과 팔의 각도가 떨어졌다는 걸 느껴서 세우려고 노력했다. 가장 좋은 체인지업은 패스트볼과 같은 폼에서 나와야한다. 그 부분이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이날 경기 전까지 류현진은 체인지업을 던질때 팔 각도가 내려갔고, 그로 인해 패스트볼과 투구폼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한편, 체인지업의 구속 상승에 대해선 "체인지업을 예전보다 위에서 내려찍어서 던졌기에 구속도 당연히 더 빨라질 수 있다. KBO리그에서 뛸 때도 그랬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던질 생각"이라고 전했다.
즉, 구속 상승은 팔 각도의 변화에 의한 자연스런 현상으로 류현진 스스로는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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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서번트>의 3차원 투구분석을 통해 류현진의 릴리스포인트(release point, 투수고 쥐고 있는 공을 마지막으로 뿌리는 위치) 변화를 확인해보자. 첫 번째 그림은 6월 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류현진의 투구 궤적을, 두 번째는 이번 텍사스전에서 류현진의 투구 궤적을 나타낸 그림이다. 빨간색이 패스트볼, 초록색이 체인지업이다.
휴스턴전에선 패스트볼(빨간색)과 체인지업(초록색)의 릴리스포인트(시작점)가 좌측으로 치우쳐진 반면, 텍사스전에선 마운드 중앙쪽으로 이동했고 릴리스포인트의 높이 역시 소폭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런 변화를 통해 휴스턴전에서 좌우로 큰 차이를 보이던 두 구종의 릴리스포인트 역시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형성되고 있다.
류현진의 인터뷰대로 팔 각도를 높이면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릴리스포인트 차이가 좁혀진 것이다. 그런데 이쯤해서 궁금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팔 각도를 높임으로써 생긴 또 다른 변화인 체인지업의 구속 상승이 향후 부작용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냐는 우려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 시점에선 기우에 불과하다.
MLB 투수들의 패스트볼-체인지업 평균구속 차이
류현진(시즌) [패] 89.6마일 [체] 79.3마일 [차이] 10.3마일
카이클 [패] 87.6마일 [체] 79.5마일 [차이] 8.1마일
류현진(TEX전) [패] 90.8마일 [체] 83.0마일 [차이] 7.8마일
야브로 [패] 86.6마일 [체] 78.8마일 [차이] 7.8마일
헨드릭스 [패] 87.1마일 [체] 79.4마일 [차이] 7.7마일
우리아스 [패] 94.3마일 [체] 87.1마일 [차이] 7.2마일
앤더슨 [패] 94.9마일 [체] 88.2마일 [차이] 6.7마일
그레인키 [패] 88.9마일 [체] 86.3마일 [차이] 2.6마일
19일 텍사스전 기준 류현진의 패스트볼(90.8마일)과 체인지업(83마일)의 평균 구속 차이는 약 7.8마일(12.6㎞/h)로 시즌 평균 차이인 10.3마일(16.6㎞/h) 대비 약 2.5마일(4㎞)가량 좁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삼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대비 체인지업 구속 차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위 자료 참고).
오히려 올 시즌 평균 차이인 10.3마일(16.6㎞/h)이 이례적인 케이스에 가까웠다. 한편, 2021시즌 MLB 전체 체인지업 구종가치(Pitch Value) 1위(10.1점)에 올라있는 잭 그레인키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구속 차이가 2.6마일(4.2㎞/h), 2위(8.7점)인 이안 앤더슨이 6.7마일(10.8㎞/h)에 그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패스트볼과 구속 차이는 체인지업의 위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낙차를 비롯한 움직임 역시 체인지업의 위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다. 구속 차이를 위해 팔 스윙을 느리게 가져가거나, 움직임을 크게 하려다 투구폼이 달라지는 것은 체인지업이란 구종의 본연의 목적을 망각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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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만 보면 늘 여유를 잃지 않는 류현진은 타고난 천재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류현진이 빅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끊임없이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 수술을 받고 복귀한 2017시즌, 패스트볼 구위 저하로 고전하던 류현진은 카이클의 영상을 참고하며 커터를 익혔고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
이뿐이 아니다. 2017 포스트시즌에 초대받지 못한 류현진은 투심 패스트볼을 익혔고, 2018시즌을 앞두곤 커브볼의 그립을 수정했다. 즉, MLB 진출 후 류현진은 거의 매년 하나씩 새로운 구종을 추가하거나 개선했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수술 후 재기 성공률이 10% 미만인 수술을 받고도 2년 연속 사이영상 최종후보 3인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어려움을 겪은 류현진은 이번에도 새로운 해법을 찾았다.
류현진의 고속 체인지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구속이 빨라졌기 때문도 움직임이 좋아져서도 아니라, 패스트볼과 투구폼 차이를 좁히는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통해 류현진은 6월 부진을 딛고 후반기 첫 등판에서 우리가 알던 에이스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포티비뉴스=이현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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