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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이현우 칼럼니스트] 지난해 토론토의 선발 로테이션을 사실상 혼자 이끌다시피 한 류현진(34·토론토 블루제이스)과 짝을 이룰 원투펀치가 드디어 등장했다.
로비 레이(29·토론토 블루제이스)가 1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 트로피카나필드에서 열린 2021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피안타 무실점 1볼넷 11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을 시리즈 스윕 위기에서 구했다. 7회 말 1사까지 안타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였다.
레이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투수 중 한 명이다. 전반기를 마무리한 시점에서 레이의 2021시즌 성적은 7승 4패 100.2이닝 25볼넷 130탈삼진 평균자책점 3.13. 다승(류현진·8승)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표에서 토론토 팀 내 1위에 올라있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점은 역시 9이닝당 볼넷이 2.24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빅리그 3년 차였던 2017시즌 한때 15승 5패 162이닝 218탈삼진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NL)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던 그는, 이후 수년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인 끝에 지난해에는 2승 5패 51.2이닝 ERA 6.62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가장 큰 문제는 9이닝당 볼넷이 무려 7.84개에 이를 정도로 제구가 좋지 않았었다는 점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는 편견과는 달리, 한 투수의 제구력이 개선되는 것은 구위가 좋아지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특히 유망주 시절을 벗어나 연차가 쌓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렇기에 빅리그 역사에선 강력한 구위를 갖추고 있음에도 데뷔 초반 반짝 활약을 펼치다가, 사라지는 파이어볼러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레이는 그 전형적인 사례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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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는 레이의 연도별 스트라이크 존 투구 비율(Zone%)과 9이닝당 피홈런(HR/9) 변화를 나타낸 자료다. 커리어 초반 자신 있게 타자를 공략했던 그는, 올 시즌 반등을 이루어내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는 비율이 줄어들고 있었다. 일반적인 투수들의 연도별 Zone%가 이러한 곡선을 그리는 가장 큰 원인은 '장타 허용에 따른 자신감 하락'이다.
실제로 [그래프]를 살펴보면 2017년경부터 Zone%와 HR/9이 반비례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장타를 의식하다 보니 피해 가는 피칭을 하면서 볼넷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Zone%가 낮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투수라고는 할 수 없다. 단적으로 지난 시즌 아메리칸리그(AL) 사이영상을 수상한 셰인 비버(26·클리블랜드)의 Zone%는 42.6%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레이와 공동 꼴찌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투수의 성적이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한 명(비버)은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 의도적으로 효과적인 유인구를 던져서 헛스윙이나 약한 타구를 만들어냈고, 다른 한 명(레이)는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구력이 부족해서 스트라이크 존과 차이가 나는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로비 레이의 2020→2021시즌 기록 변화
다승: 2 → 7승
패전: 5 → 4패
이닝: 51.2 → 100.2이닝
BB/9: 7.84 → 2.24개
K/9: 11.85 → 11.62개
HR/9: 2.26 → 1.79개
평균자책: 6.62 → 3.13
WAR: -0.4 → 1.5승
이로 인해 지난해까진 레이에겐 상대적으로 자주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확실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 주어졌고, 그러다 보니 다시 피장타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레이는 지난 수년과는 완전히 다른 자세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 바로 피홈런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레이의 성적을 비교했을 때, 가장 달라지지 않은 세부 지표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피홈런이다. 레이는 올 시즌 20피홈런으로 규정이닝을 소화한 좌완 투수 가운데 상대 타자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허용했다. 공격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욱여넣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와 다른 것은 그럼에도 레이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생긴 변화는 지난 시즌 대비 유리한 카운트에서 승부를 펼치는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레이는 유리한 카운트로 끌고 간 타석이 68번, 불리한 카운트에 몰린 타석이 107번으로 대부분 불리한 상황에서 타자를 상대한 반면, 올해는 유리한 카운트인 타석이 161번으로 불리한 카운트인 타석(116)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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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올해 레이의 카운트 유·불리에 따른 피안타율을 살펴보면 이것이 한 투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와 올해 유리한 상황에서나, 불리한 상황에서 레이의 피안타율 자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레이가 달라진 점은 본인이 유리한 환경을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현지 통계사이트는 레이가 올 시즌 들어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고 있는 원인을 평균 95.2마일(153.2km/h)로 지난해 대비 약 1.5마일 빨라진 패스트볼 구속을 꼽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구속 상승은 공격적인 투구의 원인이 아닌 부산물에 더 가깝다. 즉, 올해 레이는 세밀한 코너웍을 의식하지 않고 강하게 던지는 데 집중하면서 구속이 빨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공격적인 투구에 따른 세금처럼 피홈런이 붙고 있지만, 적어도 레이에게 있어선 홈런을 맞더라도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코너워크과 유인구로 타자의 방망이를 꾀어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식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로비 레이의 카운트 유·불리에 따른 피안타율
유리한 카운트: [2020] 68타석 0.182 [2021] 161타석 0.155
불리한 카운트: [2020] 107타석 0.328 [2021] 116타석 0.344
초구: [2020] 18타석 0.444 [2021] 42타석 0.405
지난 12일 캐나다 지역지 <토론토 선>은 레이의 호투를 칭찬하면서 "레이는 류현진을 제치고, 명백히 올 시즌 토론토의 에이스로 떠올랐다. 최근 제구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면 류현진의 4년 8000만 달러 계약은 현명하지 못한 지출처럼 보인다"며 류현진의 활약을 깎아내렸다. 이런 <토론토 선>의 보도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굳이 5승 2패 평균자책점 2.69로 토론토를 가을야구로 이끌며 AL 사이영상 투표 3위를 기록했던 류현진의 지난해 활약이나, WAR(기여승수) 1승당 가치(약 788만 달러)에 따른 류현진의 몸값 대비 활약(2020-21시즌 합계 WAR 5.1승으로 4,020만 달러 기여 연봉은 2,740만 달러)까지 갈 것 없이, 강팀에는 에이스 외에도 잘 던지는 선발 투수가 1명 이상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찰리 몬토요 토론토 감독 역시 "좋은 팀에는 에이스가 한 명 이상 있다. 레이가 그 역할을 해주고 있고, 류현진도 '당연히' 잘해주고 있다. 지금 레이가 던지는 모습을 보면 우리 팀은 에이스가 한 명 이상인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과연 류현진을 뒷받침해줄 선발 투수가 등장한 토론토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해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까?
지난해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레이의 활약을 주목해보자.
스포티비뉴스=이현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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