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스포츠서울 문상열전문기자] 뉴욕 양키스 조지 스타인브레너(2010년 작고)처럼 미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구단주도 드물다. 닉네임도 그를 상징하는 ‘보스’였다.
스타인브레너는 선박 사업을 했던 비지니스맨이다. 1973년 43살 때 스타인브레너 일생일대에 가장 잘한 일로 꼽히는 양키스 구단을 투자자들과 함께 매입했다. 당시 양키스 구단은 방송사 CBS소유였다. 프로야구 원년에 MBC 청룡이 구단을 갖고 있었던 것과 같다. 당시 스타인브레너는 1000만 달러(115억)를 투자하며 경영권을 쥐었다. 현재 양키스 구단 가치는 50억 달러(5조7625억 원)다.
구단을 인수한 초반 양키스 성적은 돋보였다. 1976~1978년 3년 연속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그러나 1979년 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자 조급증이 발동됐다. 툭하면 감독을 바꾸기 시작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스타인브레너는 감독 19명, 사장 5명, 투수코치 15명, 단장(GM) 13명을 해고했다. 특히 양키스 2루수 출신 빌리 마틴 감독과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애증관계는 현재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두 사람 모두 강한 성격으로 불꽃이 튀었다. 스타인브레너는 마틴을 감독으로 5차례 임명하고 해고했다. 10년 장기계약을 맺은 데이브 윈필드가 부진히자 그를 뒷조사한 게 발각돼 1년 동안 양키스 구단 출입금지라는 징계도 받은 인물이다.
양키스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3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가장 긴 기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구단주 시절에 양키스 구단 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거쳤다는 점이다. 스타인브레너는 1992년 양키스 마이너리그 감독 출 신 벅 쇼월터를 임명할 때부터 잦은 감독 교체를 자제했다. 쇼월터가 4년 동안 팀을 다듬은 뒤 물러나고 1996년 조 토리가 감독으로 임명되면서 양키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양키스는 1996년부터 2009년 ‘보스’가 타계하기 전까지 5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추가했다.
스타인브레너가 스포츠 문외한이어서 암흑기 때 이런 비상식적인 감독, 사장을 빈번하게 교체한 게 아니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당시 대학 풋볼(미식축구)의 거장 우디 헤이즈 감독 밑에서 졸업생 보조코치를 지냈을 정도로 스포츠맨이다. 참을성이 부족한 조급하고 강한 성격에서 비롯됐다. 다른 프로 구단주들도 스타인브레너 흉내를 낸다. 그러나 스타인브레너는 지구상에 한 명 뿐이다. 암측기를 거쳤던 ‘보스’는 이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이 됐다.
최근 키움 히어로스 허민 의장의 몰상식한 구단 운영으로 야구계가 들끓고 있다. 1982년 출범해 그동안 많은 야구인들이 인기 정상 스포츠로 가꿔온 KBO 리그를 하루 아침에 흑탕물에 빠트린 꼴이다. 동네야구, 리틀리그도 이런 식으로는 운영하지 않는다. 키움 구단은 손혁 감독의 자발적인 사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손혁 감독을 임명하고 해고한 방식은 불명예 야구사에 남을 일이다. 감독 대행에 야구판에서 듣도보도 못한 전력분석원을 앉힌 것은 야구계에 대한 모독이다. 야구인들이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할 정도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KBO 리그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moonsy10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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