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은 앞서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 우리·하나은행 CEO를 중징계하는 등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형량 기준을 높여놨다.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중징계’라는 강수를 두지 않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금융권은 물론, 법원에서도 금감원의 징계 권한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선례를 따라 중징계하기도, 그렇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어려운 ‘선례 딜레마’에 처했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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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판매 증권사 CEO 짐 싸라" 금감원 중징계 사전 통보
금감원은 지난 6일 라임 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대신증권·KB증권 등 증권사 3곳에 라임 사태와 관련한 징계안을 사전 통보했다. 이들 3곳 CEO를 중징계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사전 통보된 징계수위는 금감원 검사부서의 의견이다. 일반 형사사건에 비유하면 검찰의 구형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판사’ 역할도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하기 때문에, 검찰 구형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크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장은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맡는다. 제재심은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을 중징계로 분류한다. 금감원 중징계는 사실상 ‘금융권 퇴출’ 통보나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로는 연임 및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비공식적으로는 ‘지금 짐 싸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최근까지 중징계가 확정되고도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했다.
◇불완전 판매에 사기까지, CEO 에 내부통제 부실 책임 물어
금감원의 중징계 의사는 이미 예고됐었다. 앞서 금감원은 이들 증권사 검사 과정에서 여러 위법 사실을 확인했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 윤창현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위규 혐의는 세 갈래다.
우선 라임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한 신한금투 등은 라임과 공모해 펀드의 부실을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투자자에게 펀드 부실을 은폐하고 판매하는 등 불완전 판매 행위도 나타났다. 금감원은 이런 혐의를 검찰에 통보했다. 이 과정을 주도한 신한금투의 임모 전 본부장은 1심에서 징역 8년의 실형을 받았다.
대신증권의 장모 전 반포센터장은 라임 펀드의 부실 정황이 드러난 이후에도 “걱정하지 말라”면서 펀드를 계속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그를 구속기소했다.
불완전 판매는 물론, 증권사들이 라임 펀드를 출시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내부 통제 절차가 미비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금감원은 “다수의 중대 위법 행위가 확인됐다”면서 “관련 금융 회사와 임직원을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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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때 선례 따랐다, 금융당국 “일관성 유지”
금감원이 증권사 CEO 중징계라는 강수를 둔 데는 DLF 때 선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감원은 올해 초 DLF 출시 및 판매 과정에서 내부 통제 절차가 미비했다는 점 등의 책임을 물어 당시 은행장이던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에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확정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징계의 적절성 등을 두고 뒷말이 나왔다. 그러나 금감원은 윤석헌 원장이 직접 “경영책임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불완전 판매를 하면 경영진 책임을 묻는다는) 확실한 신호를 시장에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등 강경하게 나왔다.
라임 사태에 연루된 금융사는 DLF 때보다 혐의가 무겁다는 평가다. DLF 때는 없었던 ‘사기’라는 표현까지 라임 사태에는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판매사가 운용사와 짜고 부실을 은폐한 혐의까지 나온 것이다. 또 DLF라는 ‘정상적인 상품’을 제대로 된 검증 절차 없이 판매한 것보다는, 라임 같은 ‘불량 상품’을 내놓은 책임이 더 무겁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앞선 징계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이어가려면 중징계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번 징계 수위 사전통보는) 일관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강도 높은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꾸준히 내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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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징계권한에는 논란, 법원이 지적하기도
문제는 금감원이 과연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을 물어, CEO를 중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는 점이다. 금융사들은 ‘부실 상품을 부실하게 판매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방패를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DLF 사태 때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꺼내들어 CEO 책임을 물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임직원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시행령에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위반하면 금감원이 제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금융 당국 입장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규정이 직접적인 제재 기준으로 삼기에는 모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법원 역시 금융권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법원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이 낸 징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금감원 입장에서 더 뼈아픈 건,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논리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등에 따르면, 저축은행을 뺀 나머지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은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원회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 당국이 금융회사 임원의 제재 조치에 추상적·포괄적 사유만 제시해 구체적·개별적인 기준이 없다” 등이다.
◇선례 딜레마 빠진 금감원
금감원 입장에서는 DLF 선례를 따르기도, 따르지 않기도 애매해진 것이다. 선례대로 하자니 법적 분쟁 가능성이 열려있다. 더군다나 법원이 우리·하나금융이 제기한 본안 소송에서도 징계 권한에 의문을 제기할 경우, 금감원 권위는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한 발 빼면 앞선 결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모양새가 돼 버린다. 금감원 일각에서는 “하나·우리금융이 제기한 소송의 1심 판결이 나온 뒤 징계 수위를 정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까지 나왔다.
최종 결론은 빠르면 오는 29일 제재심에서 나온다. 다만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에 추가 제재심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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