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결과 위해 쉼없는 연구와 실험
고저차 계산, 공기 밀도도 분석
벡터 퍼팅으로 퍼트 실력도 좋아져
US오픈 최종라운드 17번 홀에서 퍼트를 준비하는 브라이슨 디섐보. [USA투데이=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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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처럼 몸을 불린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가 코스를 압도한 끝에 22일 US오픈에서 우승했다. 그가 바꾼 건 몸만이 아니다. 장비, 스윙, 전략, 머리까지 개조하려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기존의 상식을 의심했다. 물리학책을 통째로 베낀 일도 있고 수많은 연구와 실험을 했다.
과학을 전공해서인지 그는 애매한 느낌으로는 만족 못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컨디션이 좋다’ ‘나쁘다’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몸의 데이터를 알고 싶어 했다.
샷을 하기 전에도 그렇다. 공을 치기 전 샷 거리는 누구나 계산한다. 그러나 정교하지는 않다. 타깃이 10m 위라면 10m를 더하고, 바람이 강하면 두 클럽 더 길게 잡는 정도다. 디섐보는 명료한 숫자가 필요하다. 다음은 그에게 필요한 숫자들이다.
첫째 ▶공기 밀도를 계산한다. 공기 밀도와 샷 거리의 관계에 대한 계산법은 경쟁자들에게 알려질까 봐 공개하지 않는다. 둘째 ▶샷 지점과 타깃의 고저 차도 계산한다. 로프트 차이 때문에 단순하지 않다. 7야드 위쪽에 그린이 있다면 4번 아이언으로 칠 때는 9야드, 피칭웨지를 잡을 때는 4야드를 더하는 식이다. 셋째 ▶바람 계산은 구질과 바람의 방향·세기 등에 따라 다르다. 아직 완전히 이 문제를 풀지는 못했다. 그는 브리지스톤 공을 쓰는데 그 이유는 실험 결과 이 제품이 바람에 가장 안정적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넷째 ▶공이 놓인 라이 경사다. 역시 계산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섯째 ▶런 거리도 변수가 많다. 공 떨어지는 곳의 경사도 고려해야 한다. 경사가 2도라면 런치앵글이 2도 바뀌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여섯째 ▶비밀. 뭔지 밝히지 않는 비밀이 하나 있다.
장비에 대한 지식도 전문가 뺨친다. 17세 때 길이가 같은 아이언을 직접 만들었다. 웨지와 퍼터를 포함해 모든 클럽에 그라파이트 샤프트를 쓰는 얼리 어답터다. 헤드 토우 쪽 뒤가 움푹 들어간, 보기엔 흉한 웨지를 주문 제작한 뒤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린 핀 위치를 재는 컴퍼스를 이용하는 등 끝없는 실험을 했다.
스윙도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홀을 정면으로 보고 퍼트를 하는 사이드 새들 자세를 쓰다가 규제를 받기도 했다. 일반 선수들은 꺼리는 암락킹 퍼트 그립을 쓴다. 물리학 용어인 벡터 퍼팅이라 불리는 퍼트 연습을 통해 거의 꼴찌이던 퍼트 능력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집념이 대단하기 때문에 결과가 안 좋을 때는 분노를 제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퍼터를 차에 매달고 질질 끌고 다닌 일이 화제였다. 퍼트가 잘 안 돼서, 퍼터에게 레슨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퍼터는 죄가 없다. 퍼터를 쓴 퍼티(puttee·골퍼)의 잘못이다.
슬로 플레이도 눈총을 받는다. 디섐보는 “원래 슬로 플레이는 아니었는데 계산할 게 많아지면서 느려졌다. 그걸 감안하면 오히려 빠른 편”이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대충 감으로 샷을 하던 걸 숫자로 바꾼 건 과학이고 발전이다. 그는 “공이 핀 10m 옆에 떨어지는 것과 8m 옆에 멈추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내가 특별히 똑똑하지는 않지만 열정만큼은 뛰어나다. 뭔가를 정말 좋아하고 헌신할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 칼럼니스트 박노승 씨는 “디섐보는 골프를 바꾼 역사상 5대 인물 중 하나”라고 했다. 동감한다. US오픈 마지막 홀에서 6타 차로 앞서고 있는데도 야디지북에 뭔가를 꼼꼼히 적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마블 영화에서 헐크로 변하는 로버트 브루스 배너 박사도 물리학자다. 매우 인간적인 인물이다. 디섐보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의 성과가 워낙 뛰어나니 좋아하든 싫어하든 새로운 골퍼의 전형이 될 것 같다. 한편으론 20세기 골퍼의 낭만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도 든다.
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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