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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바보 같은 벽’ 앞에 대동단결 미국의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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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대회 광고 펜스 여전히 논란

우승판도 바꾼 18번홀 뒤쪽의 벽

사정 어려운 LPGA투어의 고육책

공교롭게 비판하는 쪽 주로 미국

중앙일보

이미림이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칩샷을 하고 있다. ANA 광고가 찍힌 ‘거대한 벽’은 변별력을 떨어뜨리고 메이저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미국에서 쏟아졌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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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바보 같은 벽이다.”

마지막 홀 이미림의 칩인 이글로 우승을 놓친 넬리 코다(미국)의 언니 제시카 코다는 대회장을 빠져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제시카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선수다.

이미림의 우승으로 끝난 LPGA 투어 메이저 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의 18번 홀 그린 뒤 펜스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남자 프로골프 세계 3위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트위터에 “코다의 우승을 빼앗아간, 메이저 대회에서의 매우 나쁜 세트업”이라고 썼다.

미국 언론도 ‘거대한 벽이 대회를 망쳤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여럿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도 “대회를 웃음거리로 만든 벽”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대회가 열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의 미션 힐스 골프장 18번 홀은 파 5의 아일랜드 홀이다. 그린을 넘어가면 물에 빠진다. 원래 18번 홀 그린 뒤에는 VIP 관중석이 있었다.

관중석은 그린 뒤를 다 가리지 않았다. 밑에 공간도 있어 볼이 굴러 물에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석이 없다. 조직위는 대신 그린 뒤를 완전히 막을 정도로 긴 펜스를 세웠다. ANA(전일공수)의 광고판 역할을 하던 관중석을 긴 광고 펜스로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의 지적처럼 이 펜스는 변별력을 떨어뜨린다. 공을 그린에 세우지 못해도 펜스가 막아주기 때문에 부담 없이 투(2)온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공정성 문제는 없다. 이번 대회에서 여건이 되는 선수는 다들 펜스에 대고 공을 쳤다. 넬리 코다도 18번 홀에서 티샷이 페어웨이에 갔다면 100% 펜스를 이용해 투온을 시도했을 것이다.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에서도 파 5홀에서 그린 뒤 관중석을 백보드 삼아 투온을 시도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에는 광고가 없는데, ANA는 광고판을 붙여 대회 격을 떨어뜨렸다”는 비난도 많다. 맞는 말이다. 마지막 홀 그린 뒤에 세운 긴 광고 펜스는 메이저 대회의 격에 걸맞지는 않다.

그러나 LPGA 투어의 조치를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LPGA 투어는 사정이 어렵고 ANA 인스퍼레이션은 마스터스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18번 홀 그린 뒤 관중석에 붙어있던 광고를 대신할 조처를 해달라는 스폰서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었을 거다. 아니면 LPGA 투어 측에서 18번 홀에 광고판을 붙여줄 테니 대회를 치르자고 제의했을 수도 있다.

올해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여자 오픈이 AIG 여자 오픈으로 이름을 바꿨다. 브리티시라는 정체성과 이름을 AIG라는 스폰서에게 판 것이다.

LPGA 투어의 뿌리가 된 LPGA 챔피언십도 2015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으로 이름을 바꿨다. 호적을 바꿔서라도 일단 대회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이었을 거다.

결국 이상론과 현실론의 차이다. 물론 기자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메이저의 명분’을 주장하는 쪽도 일리가 있다.

흥미로운 건 명분론자들이 이 펜스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멕시코 국경 장벽에 빗대 ‘거대한 벽’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트럼프와 함께 라운드한 토머스 등 미국의 정상급 골프 선수들은 대개 공화당 지지자다. 그런 그들이 “바보 같은 벽”처럼 트럼프를 조롱하는 용어를 빌려 쓰고 있다. 이번 일에는 보혁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더 강력한 애국주의 혹은 인종주의의 심리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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