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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비우고 베풀고 버려라, 우승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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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전액 코로나19 기부 유소연

루이스도 기부 약속한 뒤에 우승

박세리·최경주 등도 비슷한 경험

좋은 목표 세우면 흔들리지 않아

중앙일보

LPGA가 22일 유소연의 한국여자오픈 우승 상금 기부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LPGA 투어는 ‘당신에게 박수를’이란 해시태그로 유소연의 기부를 칭찬했다. [사진 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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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골프 전 세계 1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2014년 중반부터 3년 넘는 기간 82경기에 나가 우승 없이 준우승만 12번 했다. 루이스는 주로 한국 선수와 경쟁했다가 졌다. 현란한 박인비의 퍼트에, 최나연의 샷 이글에, 김효주의 놀라운 정신력에 밀렸다. 운도 없었다. 최종라운드에서 디봇에 세 번 빠져 패한 적이 있고, 나무에 맞고 공이 OB가 나 진 적도 있다. 척추측만증으로 몸에 철심을 박고도 최고 선수로 성장한 루이스였지만, 거듭된 역전패에 맥이 빠진 듯했다.

그런 루이스는 2017년 9월 우승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휴스턴 지역이 허리케인 하비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직후다. 그는 집을 떠나 대회장으로 가며 “우승하면 상금 전액을 피해복구비로 내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회에서 뛰어난 샷감을 보이던 전인지에 역전 우승했다. 자신을 위해서, 이기려고 아등바등해도 안됐는데, 남을 위해 경기하겠다고 마음먹자 오지 않을 것 같던 우승컵이 찾아왔다.

21일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유소연(30)도 비슷하다. 그의 경우 2018년 마이어 클래식 우승 후로는 안타까운 시간이 많았다. 그해 메이저대회인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연장 끝에 박성현에 졌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3위, 투어 챔피언십에서도 3위에 그쳤다. 2019년 유소연은 컷 탈락이 잦았다. 올 초 열린 LPGA 투어 개막전 빅오픈에서는 2위에 머물렀다.

유소연은 한국여자오픈 3라운드가 끝난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종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하는데 많이 떨렸다. 어떻게 해야 평안할지 고민했다. 그는 "만약 좋은 목표를 갖는다면, 흔들리지 않고 더 열심히 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승하면 상금 전액(2억5000만원)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금으로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유소연은 김효주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우승 앞에서 다들 긴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것 같은 보다 큰 명분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더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택중 신경정신과 이택중 원장은 “사회를 위한 것 같은 원대한 목표가 있다면, 집념이 생기고 더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경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세리(43)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US오픈 우승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여러 차례 우승 기회를 놓쳤던 PGA 투어 임성재(22)는 코로나로 온 국민이 힘들어하던 3월 첫 정상에 섰다. 물질적인 기부는 하지 않았지만 내가 잘 하면 위기에 빠진 주위 사람들이 힘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큰 힘을 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경주(50)가 PGA 투어에서 8승을 하고,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비결도 비슷하다. 그는 “어릴 적 장학금을 준 불우한 학생이 건실한 대학생이 되어 보낸 감사편지에 삶의 활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도움으로 멋지게 성장한 청년을 보면, 그가 마음으로 쓴 감사 편지를 보면, 그를 위해 뭔가 도움을 준 자신에 대해 뿌듯해지고 열심히 일할 힘이 샘솟을 것 같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자신이 세상에 있어야 할 존재 이유를 느끼지 않겠는가.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커다란 행복이고, 핵발전소보다 거대한 에너지다. 놀랍게도 자신을 버리면 기적이 나온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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