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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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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던'에 이어 '기합' 논란...무관중 시대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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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KBO리그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 인터뷰. KIA 이범호는 중학교(대구 경운중) 후배 투수 안지만(당시 삼성)에게 "지만이의 기합 소리 때문에 공을 못 치겠다. 기합을 넣었으면 직구가 와야 하는데 변화구가 온다"며 웃었다.

이에 안지만은 "공을 던질 때 소리가 나는 것은 내 버릇이다. 어쩔 수 없다. 마운드 위에서는 선배도, 친구도 없다. 삼진을 잡겠다"고 답했다. 많은 취재진 앞에서 나눈 덕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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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불펜투수 박상원. 그는 공을 던질 때마다 기합 소리를 낸다. 이로 인해 상대 감독에게 항의를 받기도 했고, 상대 투수가 조롱에 가까운 제스처를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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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에는 그라운드에서 진짜 논란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한화 투수 박상원(26)이 논란의 주인공이다.

지난 21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KT-한화전. 박상원은 9-4로 앞선 9회 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켰다. KT 외국인 선수 윌리엄 쿠에바스(30·베네수엘라)는 더그아웃에서 박상원이 피칭할 때마다 "악" 소리를 질렀다. 박상원이 공을 던질 때마다 내는 기합 소리를 따라 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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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에서 KT 쿠에바스가 한화 박상원이 공을 던질 때마다 기합 소리를 냈다. 박상원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도 했다. [사진 SBS스포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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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에서 KT 쿠에바스가 한화 박상원이 공을 던질 때마다 기합 소리를 냈다. [사진 SBS스포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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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반복되자 한용덕 한화 감독이 더그아웃에서 나왔다. 그리고 쿠에바스를 향해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쿠에바스는 더는 기합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박상원을 보면서 계속 웃었다. 한화 벤치에서는 야유 내지 조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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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에서 KT 쿠에바스가 한화 박상원이 공을 던질 때마다 기합 소리를 냈다. 그러자 한용덕 한화 감독이 나와 어필했다. [사진 SBS스포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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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롯데전에서도 박상원의 기합이 이슈가 됐다. 8회 초 등판한 그의 기합 소리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허문회 롯데 감독은 "기합 소리가 타격을 방해한다"고 심판에게 어필했다.

기합 소리를 내는 투수들은 전에도 많이 있었다. 박상원은 2017년 데뷔 때부터 그랬다. 그러나 올 시즌 KBO리그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 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고 있다. 또한 심판들에게 부착된 마이크를 통해 경기장 소음은 팬들에게도 전해진다.

롯데전에서는 박상원의 잘못도 있었다. 허문회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갈 때도 혼자 소리를 지른 것이다. 심판은 박상원에게 주의를 줬고, 박상원은 8회 초 피칭을 마친 뒤 허 감독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용덕 감독이 박상원을 혼냈다. 한용덕 감독은 "경기 중 상대에게 사과하는 건 보기 좋지 않다. 하더라도 경기가 끝난 뒤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상원은 이전부터 그렇게 공을 던졌다.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테니스 선수도 기합 소리를 낸다. 문제 될 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치 타자들의 '빠던(빠따 던지기, 배트 플립)' 논란처럼 양측의 입장차가 묘하게 갈리고 있다. 예년과 달리 무관중 시대를 맞아 기합 소리가 새로운 논쟁을 만들고 있다. 한용덕 감독이나, 21일 수원경기를 중계한 이동현 SBS스포츠 해설위원 등은 박상원의 기합 소리가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이들은 투수 출신들이다.

반면 허문회 감독 등 타자 출신들은 투수의 기합 소리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포수 출신 김태형 두산 감독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와 다르게 기합 소리라면 타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박상원이 등판할 때마다 자신도, 상대방도 그의 기합 소리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인지, 아니면 타자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를 여러 사람이 지켜볼 것이다. '빠던'처럼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래 진행됐지만, 무관중 경기에서는 '소리'에 대한 숙의도 필요해졌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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