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오노라 로 비앙코(41)와 파올라 카르둘로(38)는 2000년대 이탈리아 여자 배구의 황금기를 이끈 두 주역이다. 세터 로 비앙코와 리베로인 카르둘로는 2002 세계선수권, 2007·2009 유럽선수권 우승 등을 합작했다. 로 비앙코가 2005 유럽선수권 베스트 세터, 카르둘로가 2004 아테네올림픽과 2007·2009 유럽선수권 베스트 리베로에 뽑히는 등 둘은 오랜 시간 세계적인 선수로 활약했다.
둘의 공통점은 알프스산맥에 인접한 인구 1만5000명의 작은 도시 오메냐(Omegna)에서 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르둘로는 오메냐가 고향이고, 로 비앙코는 오메냐 유스팀 출신이다. 그들이 소녀이던 시절 오메냐에서 여학생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빼놓지 않고 배구장을 찾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스테파노 라바리니였다.
오메냐에서 태어난 라바리니는 그 동네에선 유명한 '배구 덕후(마니아)'였다. 선수로 뛰기는커녕 취미로도 배구공을 잡지 않았지만, 배구를 보고 분석하는 걸 정말 좋아해 남다른 식견을 갖게 됐다. 소문을 접한 오메냐 유스팀 감독이 라바리니에게 코치직을 제안했다. 1995년, 그의 나이 열여섯 살 때였다.
1979년생으로 그와 동갑내기인 기자가 고등학교에서 도시락을 까먹던 나이에 라바리니는 벌써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클럽팀과 이탈리아·독일 연령별 대표팀 등을 두루 거치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2003년과 2007년엔 이탈리아 청소년 대표팀 코치로 유럽선수권 우승을 일궈냈다. 작년엔 미나스를 맡아 브라질 1부 리그 정상에 섰다.
라바리니는 지난해 1월 한국 배구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사령탑이 됐다. 클럽 감독과 겸직을 하는 '이중 생활'에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 한국 여자 배구를 도쿄올림픽으로 이끌었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스포츠 축제를 TV로 보고 올림픽 꿈을 키웠던 그가 고대하던 그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이번 예선에선 리베로와 세터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공격에 나서는 라바리니의 '토털 배구'가 빛을 발했다. 대표팀은 김연경에게 '몰빵'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공격 루트를 선보였다. 때론 세터를 빼고 공격수를 늘리는 변칙 작전도 구사했다.
머리는 차가운 한편 가슴은 따뜻했다. 종아리가 아팠던 김희진은 '마이 아포짓(opposite·라이트 포지션)'이라 부르는 라바리니의 믿음 속에 제 몫을 해냈다. 대만과 벌인 준결승전에선 부상에도 뛰기를 원했던 김연경을 끝까지 벤치에 붙잡아두는 뚝심도 보였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평생 배구는 하지 않고 보기만 했다"던 '덕후 감독'이 한국 여자배구를 바꿔놓았다. 딱 봐도 선수 출신이 아닌 것 같은 통통한 곱슬머리 감독은 도쿄에서 또 어떤 장면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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