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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서로 으르렁거리며 진짜 프레지던츠컵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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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선수들 모인 인터내셔널팀

상대팀과 감정 싸움하며 동료애

한일전 같은 라이벌전으로 진화

중앙일보

미국의 패트릭 리드(왼쪽)와 그의 처남이자 캐디 케슬러 캐래인. 리드는 삽질 시늉으로 관중과 신경전을 벌였고, 캐디는 관중과 몸싸움을 해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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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에서 프레지던츠컵이 열렸을 당시 갤러리들은 어리둥절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브랜든 그레이스, 호주에서 온 스티븐 보디치, 인도에서 온 아니르반 라히리가 우리 편이었다. 왜 우리가 그들과 같은 팀인가,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혹시 6·25 참전국 모임인가. 아니다. 인도는 중립국이라서 참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뭔가.

인터내셔널 팀의 정의는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다. 억지로 만든 경계다. 냉정히 말하면 잡탕밥이다. 함께 겪은 역사가 없다. 그들과는 공유하는 감정이 없다. 말도 잘 안 통한다. 유기적인 소통이 필요한 포섬(공 하나로 두 선수가 번갈아 치는 경기)에서 인터내셔널 팀이 약한 건 그 이유 때문이다.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의미 있는 소통이 쉽지는 않다.

2015년 대회 당시, 한국 갤러리는 잘 모르는 우리 편보다 더스틴 존슨이나 조던 스피스, 필 미켈슨 같은 미국 팀 스타 선수에게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기자도 그랬다. 우리 팀을 응원해야 할 이유를 잘 몰랐다. 그래서 승패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게임이나 즐기자는 쪽이었다. 마지막에 배상문이 승패가 걸린 경기를 할 때만 좀 짜릿했다.

15일 호주에서 막을 내린 프레지던츠컵은 접전이었고 난투였다. 결과적으로 미국 팀이 이겼지만, 첫날 인터내셔널 팀이 4-1로 크게 앞서면서 감정싸움까지 있었다. 인터내셔널 팀이 먼저 도발했다. 최근 연습스윙 하는 척하면서 모래를 치우다 발각된 미국의 패트릭 리드를 공격하라고 호주 선수들이 홈 팬들에게 노골적으로 요청했다. 팬들은 호응했다. 장난감 삽을 가지고 나와 리드를 놀렸다. 리드는 경기 중 삽질하는 포즈를 취하며 갤러리에 맞섰다. 야유는 더 커졌다. 리드의 캐디는 “리드는 개XX”라고 한 갤러리와 드잡이를 했다가 출전정지를 당했다. ‘캡틴 아메리카’로 불린 리드는 사흘간 3경기에 나와 모두 졌다.

미국 팀 캡틴 타이거 우즈는 화가 났다. 그는 공식 인터뷰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 “술 취한 관중이 도를 넘는 행동을 했다. 최소한의 존중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인터내셔널 팀 캡틴 어니 엘스가 “우리가 미국에서 경기할 때 당한 것에 비하면 양반이다. 프로라면 입 다물고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불꽃이 튀었다. 미국 저스틴 토머스는 퍼터로 홀까지 거리를 재는 시늉을 했다. 컨시드를 주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인터내셔널 팀 캐머런 스미스는 역전승한 후 캐디와 한참 축하한 후에야 토머스와 악수했다. 에티켓에 어긋난다.

이런 난투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라이더컵에서 미국과 유럽이 늘 하던 거다. 1999년 미국 팀이 대역전승을 거둘 때, 상대 퍼트가 남았는데도 선수들은 그린에 뛰어 올라가 춤을 추는 등 추태를 부렸다. 그런 일들로 인해 앙숙이 됐고, 라이더컵은 한일전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겨야 하는 대회가 됐다. 미국 골프계는 프레지던츠컵을 라이더컵의 테스트 무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라이더컵에서 이기기 위해 선수, 작전, 조 편성 등을 테스트하는 무대로 여긴다는 의미다.

이제 프레지던츠컵도 서서히 앙금이 쌓여간다. 싸움이 라이벌과 유산(legacy)을 만든다. 한국은 머나먼 지구 반대편 남아공과 조금이나마 동질성이 생겼다. 이제야 비로소 프레지던츠컵이 시작됐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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