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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정현권의 뒤땅 담화] 명언으로 본 골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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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설렘으로 시작한다.

구력 17년인데 아직도 잠을 설치고 들뜬 마음으로 골프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좋은 동반자와 라운드를 하며 스코어도 올려보자는 생각으로 티잉 그라운드에 선다. 늘 그렇듯 첫 티샷이 가장 어렵다.

설레면서도 그것을 방해하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장타(長打)에 대한 유혹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강타(强打)를 하려면 경타(輕打)를 해야 한다”는 한국 골프의 전설 한장상 씨의 말을 떠올린다.

쉽지 않다. 공이 겨우 페어웨이를 벗어나지 않은 데에 만족하고 필드로 나간다. ‘장타 유혹에서 벗어나면 명인이 된다(보비 로크)’는데 아직 그 정도 내공은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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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5홀에서 티샷한 공이 내리막 경사 움푹한 곳에 놓였다. 볼을 옆으로 옮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순간 ‘골프는 이 세상에서 플레이하기 가장 어렵고 가장 속이기 쉬운 게임(데이브 힐)’이란 말이 뇌리에 박힌다.

‘스코어 때문에 인격을 부정당하는 게 골프’라는 속담도 명심하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왼발 내리막 경사가 어렵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가장 난제다.

배운 대로 목표물보다 약간 오른쪽을 향해 양어깨를 지면과 평형하게 스탠스를 취하고 공을 날린다. ‘골프란 50% 멘털, 40% 셋업, 나머지 10%가 스윙(잭 니클라우스)’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생각대로 안 된다. 겨우 140m 정도를 보내고 핀까지 남은 거리는 약 180m. 다행히 공이 페어웨이에 잘 안착해 5번 우드를 들었다.

20m를 남기고 온 그린에 실패했다. 나에게는 핀까지 60m 이하 거리가 가장 어렵다. 나만 그런가. 샌드웨지를 사용해 핀을 한참 지나 그린에 공을 올렸다. 정말 어렵다. ‘골프는 구력이 오랠수록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보비 로크)’는 말 그대로다.

멀지만 파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안고 퍼트를 한다. 퍼트 자세가 좋은지 나쁜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퍼트는 방법(method)도 품위(style)도 필요 없다’는 스코틀랜드 격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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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핀에 70㎝ 정도 못 미쳤다. 동반자들에게서 영어 단어(일명 OK)가 튀어나오지 않는다. 호흡을 가다듬고 긴장된 마음으로 퍼트를 한다. 홀을 거의 한 바퀴 돌고 들어간다. 보기!

첫 홀을 지났을 뿐인데도 힘이 빠진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골프코스는 모든 홀이 파는 어렵고 보기는 쉬운 것이어야 한다(로버트T 존스)’는 말도 있다.

두 번째 홀 티샷한 공이 언덕 쪽 나무 사이로 살짝 들어갔다. 경사진 데다 앞이 약간 가려졌지만 그린은 보였다. 그린을 향해 바로 날리느냐, 한 타를 먹고 페어웨이로 빼내느냐 갈등이다.

결국 그린을 향해 날렸지만 뒤땅(팻샷)을 하며 언덕에서 빼내지 못했다. ‘고수는 한 타를 버림으로써 위기를 극복하지만, 하수는 한 타를 아끼려다 위기를 자초한다’는 하비 페닉의 명언 그대로다. 다행히 세 번째 샷을 잘해 핀에서 1.5m 정도에 공을 붙였다. 또다시 파를 향한 퍼트다. 공이 홀을 약간 지나쳐 결국 컨시드를 받았다. 파를 잡은 고수 동반자에게 퍼트 비결을 물었다.

웃으며 그가 답했다. ‘골프는 가르치기도 어렵고 배우기도 어렵다(보비 존스)’는 말이 있단다.

드디어 세 번째 파3홀에서 파를 잡았다. 보기와 파를 거듭하다 7번째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페어웨이를 향한 시야각이 좁아 티샷하기 매우 힘들었다. 앞에 연못도 있어 과연 공을 넘겨서 보낼 수 있을지 모든 게 악조건이었다. 결국 걱정한 대로 공은 170m 연못을 못 넘기고 물에 빠지고 말았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세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려 보기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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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홀은 이 날 가장 기쁜 홀이었다. 나쁘지 않은 티샷에 그린까지 170m를 남기고 5번 우드로 공을 핀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우드의 그 짜릿한 맛, 뇌에서 강렬한 도파민이 분비되는 느낌이었다.

기쁨도 잠시. 9번 홀에서 타샷한 공이 OB를 내면서 결국 트리플을 범하고 말았다. 소위 버디 값을 했다. 골프는 잘 안 되는 게 매력이라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함께한 60대 동반자가 13번 홀까지 기준 타수보다 5타를 넘기고 있었다. 반면 30대 동반자는 14타를 넘겼다. ‘60대가 30대를 이기는 유일한 경기가 골프(버드 쇼탠)’라는 말이 실감난다.

15번 홀에서 동반자 가운데 한 사람이 공을 가볍게 터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은 별로 괘념치 않지만 예전에는 동반자의 공 터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힐 셔튼이란 사람이 “자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쁜 버릇이 붙는 게 골프”란 말도 했다.

16번 홀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노신사가 버디를 잡고 동반자 3명이 파를 잡았다. 모두가 만족해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7번 홀에선 두 번째 샷한 공이 왼쪽 해저드 라인 살짝 바깥에 놓였다. 공을 옮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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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낚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게임(찰스 프라이스)’인가. 착한(?) 일을 해서 그런지 운 좋게 보기로 막았다. 마지막 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렸는데 쓰리 퍼트를 하고 말았다. 파를 잡을 수 있었는데 하는 진한 여운이 남는다. 설렘으로 시작한 골프가 아쉬움으로 끝났다.

그렇다고 그 아쉬움이 매너 있는 동반자들과 편안하고 즐겁게 보낸 하루였다는 충만감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동반자에게 민망할 정도이거나 시기를 살 수준도 아닌 무난한 스코어를 기록했다.

귀갓길 운전 중에 ‘골프는 18홀이면 충분히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해주는 게임’이라는 스코틀랜드의 속담이 떠올랐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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