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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데이터 야구'와 쏠림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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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스포츠와 데이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최근 프로야구에 불고 있는 ‘데이터 바람’은 실로 광풍에 가깝다. 야구의 본질은 빼먹은 채 모든 게 데이터로 귀결되는 맹신만 난무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삼성의 허삼영 신임 감독과 롯데의 성민규 신임 단장의 부임은 ‘데이터 야구’ 바람의 정점에서 터져 나온 일대 사건이다. 프로야구 선수 경험도 일천한데다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전력분석가를 사령탑으로 앉히는 것이나 메이저리그 일개 국제담당 스카우트에게 단장의 역할을 맡기는 건 다소 상식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 두 사람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폄훼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적어도 그와 같은 인사는 상식을 벗어난 모험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야구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감독과 단장의 선임 과정에서조차 경력에 대한 꼼꼼한 검증없이 시대적 트렌드에만 편승하는 건 아니라는 게 필자의 소신이다.

야구가 데이터 종목으로 자리잡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야구를 정립하는데 스포츠기자인 헨리 채드윅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신생종목인 야구를 대중화하기 위해 보도가 중요했던 그에게 경기의 재구성을 염두에 둔 꼼꼼한 기록은 절실했다. 축적된 데이터는 결국 경기력의 척도로서 개인의 능력치를 객관화하는 지표로 사용됐다. 야구와 데이터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다.

야구의 초창기 데이터가 보도라는 필요성에 의해 발전했다면 지금의 데이터는 경기력 강화라는 전략의 한 방편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게 이채롭다. 야구를 수학과 통계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가 미국 메이저리그 ‘스몰마켓팀(예산이 적은 구단)’의 호성적 지표로 활용된 게 각광을 받으면서 ‘데이터 야구’는 날개를 달았다. 그 여파가 한국으로 분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 흐름이 마치 야구의 모든 것인 양 비이성적으로 프로야구 판 전체를 지배하게 됐다는 건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특수한 문화를 지닌 나라다. 그 어떤 바람이 불게 되면 약속이나 한듯 전체가 그 흐름에 편승하는 쏠림문화가 극심하다. 그것도 오히려 원조보다 더 강한 바람으로 진화한다는 특징도 있다. 송나라의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와 더 교조적인 성리학으로 탈바꿈한 게 대표적인 예다. 외부세계에서 유입된 천주교와 마르크시즘(Marxism)도 그랬다. 이처럼 한국은 새로운 트렌드가 몰려오면 원조보다 더 격하게 반응하는 독특한 사회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변화와 진보의 바탕이다. 다만 그러한 태도가 맹목적이거나 즉흥적이면 겉모습만 대충 따라하는 것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정작 중요한 본질은 놓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쏠림현상이 극심한 이유는 모순구조가 복잡하고 그에 따른 경쟁 또한 치열하기 때문일 게다. 다양성보다 선택과 집중을 강요하는 통일성이라는 가치가 한동안 사회의 지배적 가치로 자리잡은 것도 무시못할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압축성장 시대에서 익숙해진 결과중심주의도 이러한 쏠림현상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새로운 트렌드에 닫힌 마음을 열고 개방적 태도를 취하는 건 마땅하지만 여기에 모두가 함몰되는 극심한 쏠림현상은 사회 전체에 결코 이로울 게 없다. 사회는 늘 그렇듯 다양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게 안정적이라는 사실은 역사가 전해주는 값진 교훈이다. 사회는 갈등과 반목을 통해 변화하고 진화하기에 서로에 대한 견제를 통해 생성되는 에너지가 새로운 발전의 동력이 되는 게 자연스럽다.

야구라는 본질은 빠져 버린 채 데이터만 난무해선 결코 좋은 열매를 딸 수 없다. 사람의 경험과 그에 따른 감각이 때론 데이터보다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데이터와 감각 중 무엇이 더 우세하냐는 질문은 우매함의 극치다. 데이터와 감각의 변증법적 통일,그 조화와 균형을 논해야 할 시점에 일방의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프로야구계의 분위기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축적된 데이터의 해석과 선택 그리고 실행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데이터 야구’라는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계에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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