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에 건넨 “팔 각도를 좁혀야”
취재진 질문 대답한 게 오해 불러
뚱한 표정·말투로 소통 부족 인상
책 내고 연수 가는 그에게 박수를
선동열 전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투박한 말투와 표정 때문에 많은 오해를 샀다. 자전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을 쓴 그는 ’이제 앞으로 나와서 많은 분과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김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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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56) 전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얼마 전 강연에서 “감독님은 왜 ‘각동님’이 되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각도기와 감독님의 합성어인 ‘각동님’은 7년 전 처음 만들어졌는데, 꽤 오래 선 감독을 따라 다닌다.
2012년 4월, 당시 KIA 사령탑이던 선 감독은 취재진으로부터 “한화 박찬호(46)가 선발로 뛰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시범경기 때 보니까 찬호 팔 각도가 직각(90도)을 유지하지 못하더라. 100~120도로 벌어져 있다. 그러면 구위는 감소하고, 아래로 떨어져야 할 변화구가 옆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 설명이 보도된 뒤 선 감독에게 ‘각동님’이란 별명이 생겼다.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124승) 투수 박찬호를 한국 감독이 ‘감히’ 가르치려 한다는, 부정적인 뉘앙스였다. 선 감독은 “야구 선배로서 박찬호에게 해줄 말이 있는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답했을 뿐이었다. 박찬호를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었다.
얼마 전 선 감독을 만나 ‘각동님’에 얽힌 사연을 좀 더 깊이 물었다. 그는 “(내가 대표팀 투수코치였던)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부터 찬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나와 오래 대화한 분들은 알 거다. 내가 투수에게 강조하는 말의 90% 이상이 하체에 관해서다. 즉, 중심이동이다. 하체 활용이 완성된 (박찬호 같은) 투수에게는 디테일한 부분을 말했던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해태 시절 ‘국보급’ 투수로 불린 선동열은 1996년 일본 주니치로 이적했다. 첫 시즌 극심한 부진 끝에 2군으로 떨어졌지만, 이듬해 38세이브를 기록하며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올랐다. 야구 인생 최저점에서 그는 러닝부터 다시 시작했다. 공을 던지는 팔이 아니라 다리 근력을 만들었다. 하체를 이용한 투구 밸런스를 되찾았고, 일본에서 특급 마무리로 활약했다. 22일 발간되는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민음인) 앞부분에 이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선동열 에세이 '야구는 선동열'. [사진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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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수석코치(2004년)와 감독(2005~10년)을 지낼 때도 선 감독 이론은 흔들린 적이 없다. 당시 배영수(38·현 두산)의 경쾌한 폼은 선 감독이 강조한 하체 밸런스에서 나왔다. 상체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던 신인 투수 오승환(37·삼성)을 보고 선 감독은 “나름대로 중심 이동을 잘하니 괜찮다. 폼을 손대지 마라”고 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선 감독은 젊은 투수들에게 “밸런스를 잡으려면 스텝 앤드 스로(step and throw·앞으로 몇 걸음 내디디며 공을 던지는 훈련)를 해보라. 중심 이동 요령을 자연스럽게 익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들이 스텝 앤드 스로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그는 ‘각(角)동님’ 대신 ‘각(脚·다리)동님’으로 불러야 할 듯하다. 그는 여전히 ‘공은 다리로 던진다’고 확신한다. 20년 넘게 하체를 강조한 그가 ‘각동님’이 된 건 소통 부족 탓이다. 뚱한 표정과 말투 탓에 많은 오해가 쌓였다.
선 감독은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 문제로 1년 전 국정감사장에 불려 나갔다. 야구 대표팀 감독이 국감 증인으로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는 “그간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다. 야구계 관행을 따랐고, 청년들 아픔을 알지 못한 내 잘못이다. 더는 뒤에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가 책을 내는 것, 그리고 내년에 뉴욕 양키스로 연수(미국 플로리다주 탬파)를 가는 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각동님’ 얘기를 나누던 중, 그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왔다. 박찬호가 보낸 응원 메시지였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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