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3년차 ‘광현종’…“친구야 아프지 말고 오래 던지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좌완이자 KBO리그 에이스인 양현종(KIA·왼쪽)과 김광현(SK)이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등을 맞댄 채 활짝 웃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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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KBO리그에는 대단한 신인들이 등장했다. 고교 야구를 평정하고 SK에 1차 지명된 김광현과 2차에서 전체 1순위로 KIA에 지명된 양현종이었다. 서로 엇갈리기는 했지만 각자 성공의 길로 들어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둘은 지금까지 팀과 리그와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하고 있다.
데뷔 13년차, 돌고 돌아 정상에서 만난 김광현(31·SK)과 양현종(31·KIA)은 올 시즌 다른 적수 없이 멋진 승부를 펼치고 있다. 고3이던 2006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던 두 야구 꿈나무가 대한민국 에이스가 된 뒤 처음으로 마주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한민국 에이스들의 출발점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SK 김광현
2년차에 다승·탈삼진왕·MVP
지금 나를 돌아보니 ‘대단한 놈’
압박감 컸지만 자부심이 원동력
해외에서 시즌 보내는 게 꿈
김광현은 “프로야구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고교 입학 뒤 프로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는 먼저 입단한 (류)현진이 형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잘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며 “입단 뒤에는 막연히가 아니라 어떻게 잘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구나, 깨달으면서 변화했고 ‘잘해야겠다’는 꿈도 20대 초반에 이뤘다. 그래서 FA도 됐고 하나씩 가장 가까운 꿈을 이뤄가면서 야구를 하다보니 지금에 왔다”고 말했다.
양현종은 “같이 운동하던 (한)기주 형이 신문 1면에 매일 나오고 잘하는 모습이 내게는 정말 컸다. 나도 잘해서 저렇게 프로에 가서 유명해져야지 하는 꿈을 가졌다”며 “그 꿈을 이룬 뒤로는 1군에서 풀타임 시즌을 뛰는 것이 새 꿈이었고 한 살씩 먹으며 좋은 선배가 되는 것, 팀이 잘하는 것 등 새로운 꿈들이 하나씩 생겼다”고 말했다. 양현종은 “나는 꿈을 120% 이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어릴 때는 생각도 못했다”며 웃었다.
리그 대표 에이스는 그냥 탄생하지 않았다. 김광현은 혹독한 첫 시즌에 몸과 마음의 고난을 겪었다. 김광현은 “잘하고 싶다고 잘되는 게 아니었다. 관심과 집중을 많이 받다보니 부담이 엄청 많았다”며 “그때 나는 그저 예쁘고 완벽한 야구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첫해 2군에 가서 생각을 많이 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잘하자’고 생각했고 돌아와 그렇게 웃으며 던지려고 했더니 다른 부족한 부분도 메워졌다”고 기억했다.
김광현과 달리 단계적으로 천천히 성장한 양현종은 “나는 완성형 선수로 출발하지 않았고, 팀에 잘하는 형들이 정말 많아 쫓아가려고 엄청 노력했다. 마냥 부러워하고만 있으면 안되니까 더 열심히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기와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두 에이스는 닮아 있다.
부상도 있었고, 부진한 적도 있었고, 지나친 관심에 힘든 때도 있었다.
2017년 20승과 함께 리그 최고로 올라선 양현종은 “ ‘에이스’라는 말에 처음에는 등판할 때마다 ‘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굉장히 압박이 심했다”며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바꿨다. 팀이 중요한 경기에 나를 원한다는 건 내가 든든한 투수가 됐다는 뜻일 테니까 ‘무조건 이기자’ 생각하고 던졌다”고 말했다. 양현종은 “그런 점에서 스무 살에 그걸 다 이겨낸 광현이가 참 대단하다”며 “스무 살에는 실패하는 게 정상이다. 나는 우리 팀 막내 (김)기훈이에게도 ‘네 나이에는 무조건 맞아야 된다. 그 이유를 생각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광현(왼쪽), 양현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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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2년차였던 스무 살에 다승·탈삼진왕에 오르며 정규시즌 MVP를 거머쥔 김광현은 “말할 수 없이 압박감을 느꼈고 힘들었지만 그때의 나를 지금 돌아보면 ‘대단한 놈이구나’ 생각도 든다. 그래서 지난 시간이 내게는 가장 큰 자부심이고 원동력이 됐다”며 “현종이나 내게 어느 정도 부담은 우리 존재 이유라는 생각도 든다. 그걸 이겨내는 것이 프로선수에게는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김광현과 양현종이 데뷔한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 야구에 에이스는 많았다. 그러나 이후로 새로운 에이스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수년째 “김광현, 양현종 이후가 없다”는 걱정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역시 외국인 투수들 틈에서 국내 투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둘은 새로운 후배 에이스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양현종과 김광현은 “에이스라 불리는 지금의 시간들이 대단히 영광스럽지만 빨리 새로운 후배가 나와 함께 경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에이스를 꿈꾸는 어린 후배들에게 둘은 신예 시절을 떠올리며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양현종은 “자신감이 최우선이다. 학교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경기하고 파이팅 하자면서 했던 마음이 프로에 와서 바뀌지 않으면 좋겠다”며 “프로는 학교 때에 비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다. 그 시간만큼 노력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광현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보다 먼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한다. 나 자신을 파악하고 잘했을 때 뭘 잘했는지 알면 좋겠다”며 “자신 있게 던지면 가운데로 들어가도 안 맞지만 조금이라도 찜찜한 기분으로 던지면 100% 맞는다. 내 공에 자신을 갖고 던지는 게 최우선”이라고 조언했다.
10여년 전의 꿈을 초과달성해 에이스가 된 둘은 정상에서 이제 또 같은 꿈을 향한다. 김광현은 “어릴 때는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국제대회에서 던져보며 해외 마운드에서 시즌을 한번 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해외 마운드에서 한번 던져보는 것, 잘하든 못하든 한 시즌 던져보는 게 지금의 내 꿈”이라고 말했다.
KIA 양현종
완성형으로 출발하지 않았기에
더 열심히 했고 꿈 120% 이룬 듯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
은퇴할 때 영구결번 받고 싶다
양현종도 “(이) 범호 형처럼 모두가 마음으로 축복해주는 은퇴를 하는 것, 그리고 영구결번이 내 현실적인 가장 큰 꿈”이라며 “기회가 되면 해외 진출도 당연히 해보고 싶다. 현진이 형이 워낙 잘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서로의 마음과 달리 어쩔 수 없이 경쟁 구도에 놓여 있는 둘은 야구인생 최정점에서 ‘친구’인 서로에게 마음을 전했다.
양현종은 “광현이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잘했으면 좋겠다”며 “동기나 라이벌을 떠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투수이기 때문에 정말 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광현도 “맞다. 아프지만 않으면 반은 한다. 현종이 역시 아프지 않고 잘하면 좋겠다”며 “요즘 들어 나중에 내리막 시즌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조금씩 떨어지는 구간에 진입할 텐데 현종이도 나도 그런 부분을 잘 고민하고 공부 많이 해서 같이 오래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 글·사진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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