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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이슈 [연재]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베이스볼 라운지]감독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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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네드 요스트 감독이 워싱턴의 군 병원에 위문을 갔을 때다.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군인을 만났다. 요스트 감독은 위로와 함께 지뢰가 묻힌 곳을 어떻게 헤쳐가는지 물었다. 군인이 답했다. “지뢰를 찾아가면서 걸어갈 수는 없다. 그저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끝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요스트 감독은 “야구 감독도 똑같은 처지다. 오늘 한 경기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은 ‘파리 목숨’이다. 경기에서 이기면 선수들이 잘해서고, 지면 감독이 못해서다. 시즌 중 연패에 빠지면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야구 감독은 경기 성적에 과연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까. 미국 대선 예측 적중으로 유명한 통계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닷컴은 수년 전 메이저리그 감독들의 ‘실력’을 계산했다. 선수들의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WAR)의 변화를 계산해 ‘예상 WAR’을 설정하고, 각 시즌의 로스터를 분석해 예상 WAR과 실제 WAR의 합계 등을 조합해 감독이 경기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을 계산했다.

이를 계산한 닐 페인은 ‘100년 넘는 메이저리그의 모든 감독 중 95%는 팀 성적에 겨우 2승 정도만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얻었다. 뛰어난 감독이라도 실제 전력에 2승을 더할 수 있고, 경기 운영을 엉망으로 해도 실제 전력에 2패 정도 더하는 게 전부다.

물론, 통계적 문제는 있다. 페인은 “감독의 실제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000경기 이상의 샘플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토, 애틀랜타에서 29년 동안 4508경기를 이끈 바비 콕스 감독은 매년 평균 3.1승을 팀에 더 안겨줬다. 어떤 시즌에는 무려 10승 이상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2.7승을 까먹은 시즌도 있다.

야구 감독의 영향력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덜한 것은 그만큼 야구가 어려운 종목이기 때문이다. 150㎞ 가까운 공을 스트라이크존 언저리에 던지는 일은 쉽지 않다. “맞더라도 스트라이크를 잡아”라는 감독의 지시는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다. 그 공을 방망이로 때리는 일은 더욱 어렵다. “지금 안타를 쳐야 해”라는 사인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번트 작전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경기를 지고 이기는 것은 감독 때문이 아니다. 제아무리 엉뚱해 보이는 마운드 운영도, 당시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4차전, 호투하던 리치 힐을 교체한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의 결정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비아냥으로 돌아왔다. 당시 상황을 두고 힐과 로버츠 감독의 말이 어긋나면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로버츠 감독은 최근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오해가 있었다면, 그것 역시 의사소통에 책임이 있는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감독의 역할은 효과적인 선수 교체에 앞서, 팀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의사소통이 우선이다. 김경문 감독이 한국 야구대표팀의 새 감독이 됐다. 대표팀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다. 대표팀에 뽑힐 선수들과의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야구를 둘러싼 모든 세상과 소통해 야구를 다시 일으켜야 하는 아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졌다. 성적은 어쩌면 그다음이다.

아 참, 다저스가 진 이유는 타자들이 못 쳐서다. 다저스 타선의 타율은 2017년 월드시리즈에서 2할5리, 2018년 월드시리즈에서는 겨우 1할8푼이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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