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역 ‘붉은 물결’…엄청난 열기
10년 만에 사상 두번째 스즈키컵 우승
베트남 A매치 16경기 무패 ‘세계신기록’
12월 FIFA 랭킹 역대 최고 ‘눈앞’
동남아시아 6억5천만 인구는 유럽과 남미인들 못지않게 축구를 좋아한다. 주말 밤이면 영국식 ‘펍’(선술집)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한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실력은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에서 대부분 100위 밖이다. 2년마다 열리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대항전인 스즈키컵은 그래서 열기가 뜨겁다.
올해로 12회째인 스즈키컵에서 그동안 타이가 5번, 싱가포르가 4번 우승했지만, 타이의 라이벌을 자처하는 베트남은 이번 대회 전까지 말레이시아와 함께 딱 한번밖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베트남축구협회는 지난해 10월, 박항서(59) 감독을 영입하면서 스즈키컵 우승을 지상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박 감독은 15일 베트남에 우승컵을 안기며 미션을 깔끔하게 해결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15일 하노이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1-0으로 이겨 1, 2차전 합계 3-2 승리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관중석은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4만 관중으로 채워져 마치 월드컵 4강에 올랐던 2002년 한국의 ‘붉은 악마’를 보는 듯 장관을 이뤘다.
경기를 관람한 베트남 권력서열 2위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시상대에 오른 박 감독을 한참이나 안은 뒤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선수들은 박 감독한테 달려가 헹가래를 치며 기뻐했고, 일부 선수는 대형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기도 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밤 우승 직후 베트남 국민들은 부부젤라를 요란하게 불며 베트남 국기(금성홍기)와 태극기, 박 감독의 대형 사진 등을 들고 환호했고, ‘베트남 보딕(우승)’, ‘베트남 꼬렌(파이팅)’,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 구호를 밤새 외쳤다.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불꽃을 터뜨리고 오토바이와 자동차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의 날이었다.
이날 경기는 박 감독의 의도대로 풀렸다. 박 감독은 지난 11일 결승 1차전에서 주전 선수 6명을 스타팅에서 빼고 휴식을 줬고, 이날 결승 2차전에서는 전반 6분 일찌감치 결승골이 된 선제골이 터진 데다 체력적으로 한결 유리한 상황에서 큰 위기 없이 승리를 일궜다.
이로써 베트남은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우선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스즈키컵을 품에 안았다. 두번째는 이날 승리로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6경기 무패(8승8패) 세계신기록도 작성했다. 올해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는 지난달 17일 네덜란드에 0-2로 지면서 A매치 무패 행진을 15경기에서 중단했고, 이제 베트남이 세계 축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이번 대회 8경기에서 6승2무로 승승장구하면서 12월 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역대 최고기록(1998년과 2003년 98위) 경신을 눈앞에 두게 됐다. 베트남의 11월 피파 랭킹은 100위이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17위다. 딱 3계단만 더 오르면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만든다.
한편, 베트남은 A매치 기간인 내년 3월26일 홈에서 지난해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우승팀인 한국과 맞붙는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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