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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AIBA 전횡,두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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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교활한 자들의 학습효과는 정말 대단하다. 자신들이 저지른 나쁜 짓이 사회적으로 응징받지 않으면 패악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나쁜 머리는 늘 팽팽하게 돌아가게 마련이지만 체육계가 이토록 교활하고 저질스런 인사들의 농간에 휘둘릴 줄은 아마 꿈에도 물랐을 게다. 스포츠인의 남다른 의리? 이런 믿음을 허상으로 바꾸는 일이 국제 이벤트에서 어김없이 벌어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얼까.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국제복싱협회(AIBA)의 한국복싱 탄압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또다시 되풀이됐다. AIBA는 나동길(57) 총감독에 대한 자격시비를 문제삼아 그의 세컨드 기회를 박탈했다. 나 총감독이 AIBA의 보수교육을 받지 않아 ‘3-스타’ 코치자격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지난 2017년 대표팀 총감독에 오른 뒤 대한복싱협회와 나 총감독은 이 문제를 AIBA와 적극적으로 상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AIBA는 “나 총감독이 다음 교육을 받을 때까지 ‘3-스타’ 국제지도자 자격을 임시로 인정해주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AIBA는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 등 AIBA가 주관한 총 6번의 국제대회에 나 감독의 헤드코치 등록을 승인하고 그의 세컨드 임무를 허용했다. AIBA는 협회와 나 총감독의 문의이후 ‘3-스타’ 코치자격 보수교육을 개최한 바가 없다.

그랬던 AIBA가 뜬금없이 아시안게임 개막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11일 톰 버게츠 사무국장 명의로 하용환 대한복싱협회 회장 앞으로 종전의 입장을 뒤바꾸는 공문을 보내 복싱대표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나 총감독의 코치 직무 수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AIBA의 결정은 잊고 싶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또다시 떠올리게 했다. AIBA의 ‘한국복싱 흔들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AIBA의 전횡은 체육인들은 물론 국민들의 공분을 살 만큼 집요했다. 더욱이 AIBA의 행동이 교활하고 저열하기 이를데 없었던 이유는 선수들을 볼모로 삼았기 때문이다. AIBA는 2009 세계선수권대회, 2010 유스올림픽,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 이벤트에서 한국 선수들의 출전금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빼들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곤 했다. 교활한 AIBA 사태를 찬찬히 뜯어보면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국내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체육단체 사유화가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특정파벌이 협회 권력을 빼앗기면 AIBA의 실력자인 ‘어글리 코리언’과 손을 잡고 상식 밖의 징계나 몽니를 부리는 게 AIBA 사태의 본질이다. 이번 나 총감독의 지도자 자격 박탈 또한 국내 복싱인의 투서와 AIBA 막후 실력자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AIBA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스포츠연맹(IF)을 이용한 체육단체 사유화는 ‘부패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포츠외교력을 끌어들인 체육단체의 사유화는 초기에 잡아놓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나쁜 짓은 전염성이 강해 다른 체육단체가 모방하고 답습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사실 AIBA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 ‘한국복싱 길들이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책임이 크다. AIBA의 상식 밖의 징계와 전횡에는 늘 문체부와 체육회 고위관계자들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협회의 관리단체 지정에 차관이 앞장섰고 AIBA의 각종 징계 남발과 특정 파벌 편들기에 체육회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AIBA 막후 실력자인 ‘어글리 코리언’과 연계된 국내 특정파벌의 행동은 국익을 무시하고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저지른 패악질에 다름 아니다. 지난 2009년부터 무려 9년간 계속되고 있는 AIBA의 전횡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그들의 패악에 소리 한번 ‘꽥’ 지르지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문체부와 체육회를 향한 체육계의 시선은 따갑다. 아시안게임에서 세컨드를 봐야 할 나 총감독이 관중석에서 속을 끓이고 있는 동안 과연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교활한 자들을 단죄할 날선 의지와 뜨거운 열정이 과연 가슴에 남아있는지 묻고 싶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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