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그 나라, 프랑스 그리고 라이시테 ②] 佛, 이민자에게 무조건적 '동화' 강요… 통합 실패]
프랑스 파리 개선문.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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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먼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무슬림 난민·이민자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연일 사회면에 '예멘 난민' 문제가 보도됐고, '제주 예멘 난민 수용 반대' 국민청원에는 총 71만4875명이 동의해 역대 가장 많은 참여 인원을 기록했다. 청와대도 공식 답변했다.
답변자로 나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청원에 나타난 국민들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우리나라 국제적 위상과 국익에 미치는 문제점을 고려할 때 난민협약 탈퇴나 난민법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또 "허위난민을 막기 위해 마약 검사, 전염병, 강력범죄 여부 등 심사를 강화할 것이며, 난민으로 인정될 경우 우리 법질서와 문화에 대한 사회통합 교육을 의무화해 정착을 지원·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곧바로 인권 단체들은 난민신청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한다며 '인종주의적'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 가장 우려스런 대목은 '사회통합 교육'이다. 이슬람 국가인 예멘과 우리나라의 문화, 역사가 크게 다른 데 큰 고민 없이 자칫 통합 교육을 할까봐서다. 알다시피 난민이나 이민자를 받아들이면서 '우리에게 맞추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가 통합에 실패한 나라의 내상은 매우 깊다.
이민자 통합에 실패해 내상을 입은 대표적 나라는 '라이시테'의 국가, 프랑스다. (☞힙한 팔찌 보고 웃은 佛 친구…'라이시테' 때문이라고? [이재은의 그 나라, 프랑스 그리고 라이시테 ① 참고) 1789년 대혁명과 함께 제1공화정이 선포되던 때의, '공화국의 단일성과 불가분성, 자유·평등·박애 아니면 죽음' 구호는 프랑스 공화국의 초석이 됐다. 공화주의적 전통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형성해온 프랑스는 불가분한 단일 주권체 국가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실현을 강조하고, 시민들이 자유를 실현하는 틀인 정치공동체의 보호를 중요시 여긴다. 프랑스 국민은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라이시테와 같은 공화주의적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며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는 그동안 이민 정책에 매우 열린 태도를 보여왔다. 국적도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얻기 용이하다. 외국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모든 아이는 성년이 되는 시점 프랑스에 살고 있고, 11세 이후 프랑스에 5년 이상만 거주하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프랑스 국적을 주는 데 거리낌이 적었던 건 공화국의 주요 가치들에 동의한다면 프랑스 국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2016년 일어난 프랑스 남부 니스 테러 주범은 튀니지 태생의 이중국적자인 31세 모하메드 라후에유 부렐. 사진은 부렐 여권 사진. 부렐은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인 지난 14일 밤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니스에서 대형트럭을 몰고 군중 속으로 돌진해 84명의 사망자와 202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는 현장에서 경찰과 총격을 벌이다가 사살됐다. /사진=뉴시스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의 프랑스는 다문화사회 이민자 통합에 '실패'한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마그레브(리비아·튀니지·알제리·모로코 등 아프리카 북서부 일대의 총칭) 무슬림 이민자의 2세들은 각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도 니캅·부르카 등을 금지하는 등 이슬람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반 이슬람 국가'로 찍혀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IS 등)로부터 집중 테러 공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왜 프랑스의 통합은 실패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공화주의적 태도'다. 프랑스 공화국의 주요 가치에 동의한다면 국민으로 인정해준다는 태도는 곧 "출신국의 인종·문화·종교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공화주의 원칙을 준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떠나라"는 배타적 태도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민자를 받아들였지만, 이들을 위해서 변화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고수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마그레브 무슬림 이민자들은 1950년대부터 프랑스에 유입됐다.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들 유입에 나서면서다. 이민 1세대는 프랑스 '동화주의'에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민 2세가 문제가 됐다. 보이지 않는 차별과 배제, 사회적 멸시, 저고용과 고실업 때문에 사회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1981년 7월, 이런 사회적 차별에 분노한 마그레브 이민자 2세들이 각 도시에서 고급 승용차를 절도하고 방화 사건을 일으켰다.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마그레브계 청년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자 사제와 목사들의 주도로 '뵈르(beur, 마그레브 젊은이)들의 행진'이 시작됐다. 이들이 마르세유를 떠나 파리에 도착했을 때 6만명에 이르는 프랑스인들이 이들을 맞이해 환영했고, 이렇게 인종주의가 철폐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1990년 보앙블랭, 1995년 낭테르, 1997년 퐁텐블로, 1998년과 2004년의 투르쿠앙, 2000년 릴과 에손, 2004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연달아 무슬림 이민자 2세들의 소요가 일어났다. 그리고 2005년 가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될 정도의 폭동이 파리 '방리유'(banlieue·도시 외곽 지역)에서 일어났다. 폭동 발발 12일 만에 차량 5800대가 불타고 1500명이 체포됐으며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작은 사회에서 배제된 데 대한 불만 표출이었지만 결과는 무슬림적 정체성 강화로 이어졌다. '단일 공화국의 이상'이란 이름으로 배제된 자신을 이슬람화를 통해 정당화하는 것이다. 프랑스 공화주의의 엄격한 적용이 오히려 극단적 이슬람 공동체주의를 빚어냈다고 풀이할 수 있겠다.
폭동 이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동화주의 정책이 실패했으며, 앞으로 사회통합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불거졌다. 하지만 결국 책임 소재는 이민자들을 평등하게 포용하지 못한 '프랑스 사회'가 아니라 '사회에 동화노력을 하지 않은' 무슬림 이민자에게 부여됐다.
정치인들은 이런 여론 양상을 놓치지 않고 '이민문제의 정치화'(정치권이 세력 확장을 위해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 이민문제를 치안·경제위기·국가정체성 문제 등과 연계해 정치쟁점화)에 돌입했다. 공화국적 가치('단일한 프랑스' '라이시테' 등)가 다시금 강조됐고, 이에 반하는 듯 보이는 '무슬림적 가치'(무슬림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히잡을 쓰고 시간마다 기도를 하는 등 '라이시테'의 세속주의와 결이 다른 측면이 있다)는 국가적 배척의 대상이 됐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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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인물이 주류 보수 우파 정치인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다. 그는 내무부 장관(2002~2007년 4월) 때부터 대통령(2007년 5월~2012년 4월) 재직 기간에 줄곧 무슬림 이민자들을 비판해왔다. 사르코지는 '2004년 학교에서 히잡 착용 금지법 제정' '2007년 이민·통합·국민정체성 및 동반발전부 신설' '2010년 공공장소에서 니캅·부르카 금지법 제정' 등에 주도적으로 찬성하는 등 반 무슬림 이민자 여론을 조성했다. 2005년 파리 방리유 폭동에 대해서 그는 "공화국의 질서를 위협하는 폭력행위"라면서 "똘레랑스 제로(tolérance zero·무관용)"를 선언했고, 2011년에는 "다문화주의에 실패 선언"하면서 프랑스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무슬림 이민자'에게 돌렸다.
국민적 여론도 이와 유사했다. 좌파와 우파에 관계 없이 프랑스 정치인과 주류 시민들은 프랑스 내 무슬림이 라이시테 등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가치를 위협한다며 단호함을 보여줘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그 기저에는 유라비아 공포(Eurabia·유럽과 아라비아의 합성어. 급증하는 무슬림인구로 인해 '유럽이 급격하게 이슬람화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었던 것 같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Le Monde)가 2013년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이민자가 너무 많다"고 대답했으며 62%는 "프랑스가 더 이상 프랑스답지 않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외곽 방리유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의 지도에 따라 줄서 있다.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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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도 정책에 이를 반영했다. 세속적 삶에서 종교를 분리하라는, 공화국의 라이시테 원칙은 더욱 강조됐다. △2004년 라이시테 원칙에 준거한 공교육 기관에서의 히잡, 십자가, 키파 등 종교적 상징물 착용금지 △2011년 4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이슬람 베일(니캅·부르카) 착용 금지 △2013년 하반기 프랑스 교육당국의 '학교에서의 라이시테 헌장' 공표와 모든 학급내 '헌장' 부착 △2015년 공공질서 위협, 수상안전 등을 이유로 30여개 지방자치단체 해변가에서 부르키니(부르카와 비키니의 합성어)의 착용금지 등.
대혁명 때부터 1980년대까지 프랑스 라이시테의 주 타깃은 '주류'인 가톨릭이었지만, 이제 주 타깃은 '소수'인 이슬람으로 전환됐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가치관이 소수에 대한 폭력이며, 결국 무슬림 이민자를 적대시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만 이용돼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은 꽤나 종교에 열린 태도를 보여왔다. 타인과 나누지 않아야 할 대화 주제로 '정치, 종교' 등을 꼽는 등 타인의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서 보듯 한국은 아직 무슬림들에겐 열린 태도가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우려되는 건 만일 국제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문화우월적 시각에서 그들에게 '우리에게 맞추라'는 태도를 보일 경우다. 2005년 파리 방리유 폭동이나 2016년 니스 트럭 테러 등의 비극이 한국에서 재현되지 않으려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균형적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할 것이다.
참고문헌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 지성공간,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이슬람의 시각으로 본 프랑스 히잡 논쟁, 조선대학교, 황병하
'히잡 금지'와 '부르카 금지'를 통해 본 프랑스 사회의 이슬람 인식, 프랑스사연구, 박단
프랑스의 이슬람포비아 확산 원인, 세계지역연구논총, 김승민
프랑스 국민전선의 라이시테 이념 수용: 이민자 배제 합리화 전략을 중심으로, 유럽연구, 오창룡·이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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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La Haine, 1995). 파리 외곽 방리유에 사는 세 명의 젊은 소수자 이야기. 유태인, 아랍인,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구성된 이 청춘들은 증오를 키워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이재은의 그 나라, 대만 그리고 반한감정 ①] 계속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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