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조건이 조금 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캐나다와의 협약의 경우 불법 월경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멕시코에 제안한 협약은 그렇지 않다. 같은 협약이 대상국에 따라 조건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이민자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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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협약, 다른 조건
워싱턴포스트는 10일(현지시간) 커스텐 닐슨 미 국토안보부 장관이 지난 4월 중순 쯤 멕시코를 방문해 이른바 ‘안전한 제3국 협약’ 체결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토안보부를 찾아 닐슨 장관에 불같이 화를 낸 직후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주춤했던 불법 월경자수가 다시 치솟자 닐슨 장관을 닥달했고, 이 때문에 닐슨 장관의 사임설이 불거지기까지 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달랠 묘책으로 그는 해당 협약 체결을 멕시코에 제안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협약 체결 대가로 멕시코에 거액의 재정 지원 조건까지 제시됐다고 보도했다.
닐슨 장관이 제안한 ‘제3국 협약’은 난민 신청자가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난민 심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협약이 체결될 경우 미국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남쪽 국경을 넘은 월경자를 난민 심사나 재판 없이 곧바로 멕시코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된다. 중미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의 남쪽 국경에 도착하려면 멕시코를 반드시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즉 멕시코가 ‘첫 도착 국가’가 되는 셈이다. 모든 불법 입국자를 기소하는 무관용 정책을 지속하면서도 ‘가족 격리’는 중단해야 할 처지인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묘책’ 중 하나인 셈이다.
미국은 앞서 2004년 캐나다와도 같은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런데 조건이 조금 달랐다. 멕시코에 제안한 협약과는 달리 캐나다와의 협약은 합법 월경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미국에서 ‘불법’ 월경한 입국자의 경우 미국으로 돌려보내지 못한다. 이민자들이 이런 맹점을 이용해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 미국 내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들이 지난해 임시보호지위(TPS) 갱신이 중단되자 캐나다로 대거 불법 월경했고, 올 들어선 나이지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와 뉴욕주를 거처 캐나다 국경을 넘고 있다. 결국 같은 협약임에도 상황에 따라 조건을 달리해 접경국에 이민자들을 떠넘기려는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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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좋겠지만…
협약을 제안받은 멕시코 정부는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 부처들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무역 보복 우려, 재협상이 사실상 중단돼 폐기 직전에 몰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미래 등을 감안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무 부처들은 협약이 체결될 경우 미국으로 향하던 이민자들이 모두 멕시코로 몰려들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미국의 남쪽 국경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11만9144명으로, 한해 전 6만8530명에 비해 2배 가까이 폭증했다. 현재 멕시코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감당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이민자들에게도 재앙이 될 것이다. 멕시코에선 이민자들이 살인, 강도, 인신매매, 성폭력 등의 범죄에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십명의 이민자 행렬이 범죄 조직에 의해 한꺼번에 몰살된 적도 있다. 미국으로 향하는 중미 출신 이민자들이 개별적으로 이동하지 않고 소위 ‘캐러밴’이라 불리는 무리를 지어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국으로 추방될 위험도 훨씬 높아진다. 매년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25만명 가량의 중미 출신 이민자들 중 대부분은 미국으로 향한다. 멕시코에 잔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지난해 멕시코가 추방한 이민자는 9만4587명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7만4789명)보다 많았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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