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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유럽연합, ‘심사센터’ 설립 등 난민 개혁안 극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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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길고 힘겨운 논의 끝에 합의한 날짜 남긴 29일 합의

단속 강화, 심사센터 설립, 역내 이동 금지 등 내용 담겨

메르켈 독일 총리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심사센터 어디에 설치할지 두고 다시 힘겨운 협상 이뤄질 듯



유럽연합(EU) 정상들이 10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단속을 강화하고, 도움이 필요한 진짜 난민을 가려내기 위한 심사를 진행하는 ‘난민 심사센터’를 만드는 것을 뼈대로 한 난민 대책에 합의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 <아에프페>(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28개국 정상들이 “날짜를 넘기는 길고 힘겨운 회의 끝에 난민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합의 문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이날 △역내로 들어오는 난민 수를 줄이기 위해 국경관리를 강화하고 △역내에 난민 심사를 진행할 수 있는 심사센터를 만들며 △한 국가에 난민신청을 한 이들이 다른 유럽연합 국가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것을 뼈대로 한 개혁안에 합의했다. <비비시>는 또 정상들이 “난민의 재분배나 재정착은 자발성의 원칙에 따라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역내로 들어오는 난민을 각국에 의무적으로 분배해 왔다.

유럽연합은 난민이 처음 도착한 국가가 심사를 책임진다는 ‘더블린 원칙’이라는 난민 정책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15년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 등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에서 한해 동안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몰려들자, ‘유럽의 위기’가 시작됐다.

첫번째 문제는 중동에서 난민이 유럽으로 넘어오는 관문이 되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난민 관리의 책임이 집중되는 ‘독박’ 현상이었다. 두번째,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등에선 난민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가진 극우 정권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결정적인 위협은 그동안 유럽의 ‘개방적 난민 정책’의 버팀목이 되어 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퇴진 위기였다. 메르켈 총리(기민련)의 연정 파트너인 호르스트 제호퍼(기사련) 내무장관은 최근 다른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이 독일 국경을 넘어오면 신청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연정을 파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러는 한편 난민들 돕는 개인과 단체를 형사처벌한다는 법까지 만든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부담’을 유럽연합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는 구상 자체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단합이 난민이라는 ‘난제’ 앞에서 갈갈이 찢겨 나간 셈이다.

이날 합의를 보면, 이런 복합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유럽연합의 고민이 담겨 있다.

먼저, 유럽연합은 국경 강화에 나서 전체적인 난민의 수를 줄이기로 했다. 2018년 현재까지 유럽으로 몰려든 난민의 수는 4만3600여명에 이른다. 2015년의 위기 상황에 견주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유럽연합의 단합을 해칠 수 있는 많은 숫자다. 유럽연합은 이를 위해 중동과 유럽을 잇는 터키와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효과적인 국경통제를 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둘째, 난민이 처음 유럽연합으로 밀려드는 ‘현관 국가’인 이탈리아 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심사 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유럽연합은 이 곳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이들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수 난민’인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이주하려는 ‘경제 이민’인지를 가려낼 예정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인 ‘어디에 난민 센터’를 세울 것인지에 대해선 이날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세번째로, 난민 문제로 인해 곤경에 빠진 메르켈 총리를 위해 한 국가에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이 다른 유럽연합 국가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어렵게 합의안에 도착한 정상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새벽 5시 “정상들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민 문제와 관련해 공통된 문서에 합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좋은 신호”라면서 “각국의 다른 관점을 하나로 잇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전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도 “이번 유럽연합 정상회의 이후 유럽은 더 책임감 있고, 더 연대감이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오늘 이탈리아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우리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포퓰리즘·극우 정권을 이끄는 콘테 총리는 이날 회의 기간 내내 “난민 문제에 대한 이탈리아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회의의 전체 결론을 거부하겠다”고 다른 국가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의 협력이 이날 합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이 정도 합의안이 메르켈 총리를 구하는데 충분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은 앞으로 심사센터를 어디에 설치할 지 등을 둘러싸고 다시 한번 힘겨운 협의를 이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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