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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16년 전 오늘 ‘홍명보 골·4강 신화’…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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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역사 속 오늘] 16년 전 오늘 2002년 6월 22일

한국 축구 대표팀, 승부차기서 스페인 꺾고 4강 진출

23일밤 12시 러시아월드컵 멕시코와 예선 2차전



“4강~~~~~.”

시간이 멈춘 듯한 긴장감만이 온 경기장을 감돌았습니다. 오늘로부터 16년 전인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한국(당시 FIFA 랭킹 40위)과 스페인(당시 FIFA 랭킹 8위)의 월드컵 8강전 경기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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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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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120분 연장 사투에도 득점 없이 비겨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 선수가 모두 골을 넣었습니다. 이어 골키퍼 이운재 선수가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인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인 홍명보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아마 모두가 수없이 다시 보셨겠지요. 홍명보 선수가 차분하게 차 낸 공은 오른쪽 네트에 빠르게 꽂혔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아시아에서 첫 월드컵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써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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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홍명보가 활짝 웃으며 동료들에게 달려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광주/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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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축구 국가대표였던 유상철 선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홍명보 선수가 슛하는 순간을 도저히 맨 정신으로 볼 수 없어 그냥 고개를 돌려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완성하는 순간, 120분 동안의 숨막히는 긴장을 견뎌낸 건 4800만 국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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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국의 거리는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환호와 열광으로 잠 못 이루는 축제의 밤이 이어졌습니다. 전 국민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긴 ‘아시아 첫 4강 신화 달성’은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생생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운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준 ‘아시아 첫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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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 경기가 끝난 뒤 한국의 4강 진출에 결정적 수훈을 세운 이운재와 히딩크 감독이 포옹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광주/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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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23명 태극전사들은 이날의 승리로 6전 5승 1무의 전적을 기록하며 불패 신화를 이어갔습니다. 한국은 폴란드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축구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사실 한국의 선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 강호들만의 축제와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4강 진출은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를 통틀어서도 유례가 없을 만큼 대단한 기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이 뒤흔들리고, 세계가 경악할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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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2년 6월 22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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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의 연승을 그저 ‘운’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8강에 오른 팀들의 슈팅과 코너킥, 슈팅 허용 등을 집계한 결과 한국은 공·수 모두 8강팀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4강 진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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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집계 결과 한국은 4경기 동안 모두 55개의 슈팅을 쏴 8강팀 가운데 독일(66개)과 브라질(57개)에 이어 3번째로 많았습니다. 코너킥은 한국이 32개로 1위였습니다. 2위인 독일(22개)과 무려 10개 차이가 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설기현과 박지성의 날카로운 좌우 측면 돌파가 상대 수비수들이 공을 걷어차기에만 급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세계가 주목한 ‘역동적 코리아’

‘무적함대’ 스페인을 격침한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외신들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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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비비시>(BBC)는 ‘한국의 꿈은 계속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드라마 같은 승부차기 승리로 믿을 수 없는 월드컵 탐험을 이어가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4강에 진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국 팀의 골키퍼 이운재 선수가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의 네 번째 선수 호아킨 산체스의 골을 막는 사진을 싣고 “이운재가 한국을 구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의 승리는 이변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월드컵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이라고 극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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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최대 일간지 <콤파스>(KOMPAS)는 1면 상단에 붉은 티셔츠를 입은 축구팬들이 4강 진출이 확정된 뒤 거리에서 부둥켜안고 울먹이는 장면의 사진과 함께 ‘한국 경이롭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신문은 “한국이 세계 축구사에서 새로운 사건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월드컵 4강은 유럽과 남미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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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일본의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진행자는 “한국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이 여세를 몰아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까지 꼭 와 달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자국 축구 대표팀의 성적이 16강 진출에 그친 만큼 아쉬움과 부러움이 담긴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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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유럽의 강호를 잇달아 깨뜨리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국외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급상승하는 효과도 불러왔습니다. 특히 온 나라를 뒤덮은 붉은색 응원 물결이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국가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6강 진출만으로도 월드컵 공식 후원 업체의 브랜드 인지도는 3%, 한국의 100대 기업 인지도는 1% 정도 상승한다고 보면, 약 120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는 셈”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우리가 바로 ‘붉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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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주목한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은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운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라는 외침은 국민적 구호가 됐습니다. 특히 붉은 악마들은 기발한 카드섹션으로 경기장을 찾은 관중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월드컵을 관전하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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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스탠드에 붉은 악마가 마련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카드섹션이 준비되어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김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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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이 열린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PRIDE of ASIA’라는 영문 문구의 카드섹션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시아의 자부심’이라는 뜻대로 한국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침몰시키고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데 밑거름이 된 응원 문구였습니다. 붉은 악마들은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도 ‘AGAIN 1966’이라는 내용의 카드섹션을 준비했습니다. 1966년 북한이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이룬 8강 신화를 우리의 태극전사들도 이어가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또한, 붉은 악마는 폴란드와의 예선 1차전에서는 ‘WIN 3-0’, 미국전에서는 ‘GO KOREA16’, 포르투갈전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만 명의 관중이 붉은 옷을 맞춰 입고 구호를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보여주는 카드섹션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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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은 경기장에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은 시청 앞과 광화문 네거리 등 전국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한국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거리응원에 나선 것으로 추산됐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였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경기대회에서 한국전이 벌어진 다섯 차례의 길거리 응원에 나선 붉은 인파는 전 국민의 30%에 이르는 1326만 명(연인원)이었습니다.

월드컵 천재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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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2년 6월 22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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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휩쓴 월드컵 열기에 흥미로운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맥주·곱창집 등 대형 술집이나 음식점에서는 40인치 이상의 대형 TV 설치 바람이 불었습니다. 심지어 대형 업소뿐 아니라 주택가와 골목상가에까지 TV가 설치돼 떼거리 관람 문화가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가전업체에서는 TV 재고가 없어 납기일을 못 맞추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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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행사를 열기로 계획했던 단체와 기업, 학교에서는 ‘월드컵 천재지변’을 겪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한국팀의 4강 진출로 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할 형편에 놓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국의 대학교에서는 기말고사를 일주일씩 연기하고 백화점은 임시 휴업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공연 업계도 예약일정을 바꿔주거나 예약 취소를 통해 공연 일정이 한국전과 겹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모두 감히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한국 축구 대표팀의 ‘4강 진출’로 일어난 웃지 못할 일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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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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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모이면서 더위와 긴장 탓에 곳곳에서 사고가 속출하기도 했습니다. 극적인 승부차기로 인해 서울의 응원 현장에서는 32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고, 121명이 응급조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창원에서는 축구를 시청하던 70대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옮겼으나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숨진 남성의 가족들은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홍명보 선수가 골을 넣고 4강이 확정되는 순간 ‘이겼다’며 환호하다 쓰러졌다”고 말했습니다.

뜨겁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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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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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을 웃고 울렸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은 6월 29일 한국과 터키 3~4위전을 마지막으로 한 달간의 축제를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2002년 6월이 감동으로 남은 건 ‘아시아 첫 4강 신화’라는 기적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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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미국 경기에서 부상 투혼 황선홍.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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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발행한 초·중·고교 교과서에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 신화가 수록됐습니다. 교재에는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월드컵 취지를 비롯해 히딩크 감독의 지도능력, 선수들의 투지, 불우환경을 극복한 선수들의 성장과정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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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2002 월드컵 한국-미국 경기 응원전을 마친 시민들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김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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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붉은 악마 등 우리 국민의 질서, 청결, 예절 운동 등 외국인이 본 한국의 모습도 함께 수록됐습니다. 2002년 6월,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선전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이룬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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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웨덴전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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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2018 FIFA 월드컵이 총 33일의 일정으로 러시아에서 개최됐습니다. F조에 속한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18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한 뒤 오는 24일 0시 멕시코와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는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밤에 열리는 만큼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는 대규모 응원전이 예정돼 있습니다.

1차전 패배로 축구 대표팀에 대한 냉소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1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뜨겁게 응원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뜨겁게 ‘대~한 민국’을 외쳤던 그날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준비되셨나요?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2018 러시아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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