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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찬밥들의 '라스베이거스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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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L 베이거스 골든나이츠

다른 구단서 버린 선수·감독 모아 신생팀으론 리그 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시리즈 전승 통과

올 시즌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에 처음 뛰어든 베이거스 골든나이츠가 미국 프로 스포츠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골든나이츠는 정규 리그에서 51승(24패 7연장패)을 거두며 미 4대 스포츠 사상 신생팀으로선 처음으로 디비전(서부콘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챔피언에 올랐다. 또 플레이오프에서도 LA 킹스에 4전 전승을 거두고 1라운드(콘퍼런스 8강전·7전4선승제)를 가장 먼저 통과했다. NHL 사상 신생팀이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전승 통과한 것도 골든나이츠가 처음이다.

골든나이츠의 선전은 '기적'이나 '이변'에 가깝다. 골든나이츠는 고액 연봉 스타가 한 명도 없다. 팀내 최고 대접을 받는 골리 마크 안드레 플러리(34)의 연봉 575만달러는 올 시즌 최고액 선수인 패트릭 케인(시카고 블랙호크스·1380만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골든나이츠는 오히려 지난해 6월 창단 때 기존 30개 팀이 "쓸모없다"며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선수들로 짜인 '퇴물 집합소'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밀리면 끝'이란 절박함 속에 뭉친 선수들이 정규 시즌 시작하자마자 기존 팀들을 파죽지세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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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소속팀에서 '골 못 넣는 선수'로 평가받아 4라인에서 몸싸움을 주로 맡았던 스웨덴 출신 공격수 윌리엄 카를손(25)은 올 시즌 43골 35어시스트로 MVP급 활약을 펼쳤다. 앞선 3시즌 18골 32어시스트 성적과 비교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 캐나다 출신의 조너선 마세슈(28)는 아예 신인 드래프트에 지명조차 되지 않았던 선수다. 지난 시즌 플로리다 팬서스에서 30골을 넣었음에도 '보호선수' 명단에서 빠졌다. 팬서스의 버림을 받은 마세슈는 올 시즌 27골 48어시스트로 카를손과 함께 최강의 공격 라인을 구성했다.

2009년 피츠버그 펭귄스의 우승 멤버였지만, 2016년과 2017년 우승 때 벤치 신세였던 골리(골키퍼) 플러리도 플레이오프 4경기에서 3골만 내주며 완벽히 부활했다. 각 팀에서 쫓겨난 선수들을 절묘한 용병술로 최강 멤버로 만든 제라드 갤런트(55) 감독 역시 지난 시즌 플로리다 팬서스에서 해고의 아픔을 겪었다.

골든나이츠의 성공은 연고 도시가 사막 한가운데 인공으로 세워진 '도박과 향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라스베이거스는 뜨내기 여행객이 많아 연고지 팬들의 충성심이 절대적인 프로 스포츠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시내 한 공연장에서 무차별 총격으로 58명이 숨지는 참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골든나이츠는 사건 9일 뒤 치른 홈 개막전 때 선수들 헬멧에 'Vegas Strong(라스베이거스는 강하다)'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였고, 창단팀 소개 시간엔 참사 당시 구조와 의료 활동에 뛰어든 소방관과 경찰, 의사와 간호사 등 숨은 영웅들 이름을 선수들보다 먼저 불렀다. 홈 팬들은 기립 박수로 시민 영웅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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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유명 호텔‘뉴욕-뉴욕’자유의 여신상이 골든나이츠 유니폼을 입은 모습. /골든나이츠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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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 골든나이츠 홈 경기는 올 시즌 예외 없이 1만7000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라스베이거스시는 골든나이츠가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자 아예 한 호텔 앞 자유의 여신상에 대형 유니폼을 씌우며 선전을 기원했다. 시민들은 우승 기원을 담아 'Vegas Strong' 대신 'Finish Strong'이란 문구를 외친다. 플러리는 "이 위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골든나이츠는 2라운드에선 새너제이 샤크스와 맞붙는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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