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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스노보드 퀸의 '양다리'… 빌린 스키 타고 얼떨결에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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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알파인스키 0.01초차 우승… 레데츠카 "점수판 고장 아닌가요"

"화장도 안했는데 우승이라니" 기자회견·인터뷰 때도 고글 사수

부친은 '체코의 조용필'

주특기 스노보드는 22일 예선

조선일보

에스터 레데츠카


평창올림픽에서 '투잡' 뛰는 선수가 잇따라 대이변을 일으켰다. 에스터 레데츠카(체코)와 요린 테르모르스(네덜란드)가 '부업 종목'에 출전해 당당히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주 종목이 스노보드인 에스터 레데츠카(23)는 지난 17일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대회전에서 1분21초11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소치 올림픽 챔피언인 오스트리아 안나 파이트(2위)에 0.01초 앞선 것은 물론, 미국 '스키 여제' 린지 본(1분21초49·6위)도 제쳤다.

레데츠카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우승을 알지 못한 듯 전광판 앞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1위라고 했을 때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기록과 바뀐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올림픽 알파인스키에 출전한 것은 이날 처음이었고, 스키조차 이번 대회 여자 알파인스키 대회전 우승자인 미카엘라 시프린(미국)의 헌 스키를 빌려 탔기 때문이다.

공식 기자회견 땐 카메라 앞에서 고글을 벗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자리에 올 줄 몰라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국 BBC는 "레데츠카의 우승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세계 1위인 레데츠카에게 알파인스키는 '부업'이다. 2015년 알파인스키 겸업을 시작한 이후 그동안 공식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다. 올림픽 스노보드와 알파인스키 동시 출전도 이번이 처음이다.

아버지 야넥 레데츠키는 '체코의 조용필'이다. 발표한 노래만 200여 곡이다. 2004년 뉴욕 브로드웨이, 2007년 우리나라 무대에 오른 인기 뮤지컬 '햄릿'의 작곡가이자 각색가이다. 그가 2007년 방한할 당시 국내 언론은 "동유럽 최고 인기 뮤지션의 첫 방한"이라면서 대서특필했다. 어머니 주자나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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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은 공개 못해요 - 스노보드가 주종목인 체코의 에스터 레데츠카가 지난 17일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대회전에서 우승한 뒤 고글을 쓴 채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고글을 벗지 않는 이유에 대해“이런 자리에 올 줄 몰라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AF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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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린한테 빌린 스키로 우승 - 레데츠카가 17일 평창올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수퍼대회전에서 경기하는 모습. 그는 이날 1분21초11의 기록으로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레데츠카는 이번 대회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 우승자인 미카엘라 시프린(미국)으로부터 스키를 빌려서 탔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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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데츠카는 2세 때 스키를 탔고, 5세 때 오빠를 따라 스노보드에 도전했다. 14세 때 코치가 "한 종목에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하나만 고르라고 강요하면 다른 코치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스키·스노보드 훈련은 대회 일정에 따라 약 3주씩 번갈아 가며 실시했다. 스키 훈련 땐 스노보드를 타지 않는다. 레데츠카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면 한 종목만 했을 것"이라면서 "스키의 스피드에 적응해서 그런지 스노보드를 탈 때면 슬로모션 모드를 켠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레데츠카는 오는 22일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예선에 출전한다.

쇼트트랙이 주업인 요린 테르모르스(29)도 이변을 만들었다. 그는 지난 소치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두 종목에 동시 출전했고, 지난 14일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세계 최강 고다이라 나오(일본)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18일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도 출전해 37초539의 기록으로 6위에 올랐다. 테르모르스는 2010 밴쿠버올림픽에 쇼트트랙 선수로 처음 출전했다. 이후 쇼트트랙 훈련의 일환으로 롱트랙(스피드스케이팅) 연습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소치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와 팀추월 2관왕에 올랐지만, 쇼트트랙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쇼트트랙에선 지난 17일 열린 1500m에만 출전했지만 5위에 그쳤다. 테르모르스는 "쇼트트랙은 전술과 경쟁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하고, 스피드스케이팅은 나와의 싸움"이라면서 "서로 다른 두 종목의 경험을 결합할수록 나는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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