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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올림픽 70년 설상종목 노메달… 배추보이가 끝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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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이상호 유로파컵 金… 평창서 한국 첫 설상 메달 기대]

8세 때 스노보드 시작한 유망주… 한때 배추밭 썰매장에서 훈련

외국인 코치 두는 등 지원 힘입어 올림픽 우승 강자들 모두 제압

"내 실력 제대로 보여주겠다"

한국 동계 스포츠엔 지울 수 없는 오점이 하나 있다. 올림픽 설상(雪上·눈밭) 종목 메달 '0'이라는 숫자다. 1948년 생모리츠부터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은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첫 메달(스피드스케이팅 김윤만 은메달)을 따냈고, 2010년 밴쿠버 때는 세계 5위를 기록하며 '동계 강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14년 소치까지 따낸 총 53개의 올림픽 메달(금26·은17·동10개)은 모조리 빙상 종목에서 나왔다. 내년 평창의 102개 메달 종목은 빙상이 41개, 설상이 61개로 설상의 비중이 큰 데도, 한국에 눈밭은 여전히 황무지인 셈이다.

◇70년 한(恨) 풀까…배추밭 소년의 도전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70년 묵은 설상 종목의 한을 풀어주리라 기대를 받는 선수가 스노보드의 이상호(22)다. 그는 9일 열린 스노보드 유로파컵(독일 호흐퓌겐) 평행대회전(PGS) 1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유로파컵은 FIS(국제스키연맹) 월드컵보다 한 단계 낮은 대회지만, 이번 대회는 월드컵 시즌 개시 직전에 열렸기에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보드를 탄 선수 두 명이 나란히 슬로프를 내려오며 1대1로 속도 대결을 펼치는 토너먼트 형식의 경기다. 이상호는 이번 유로파컵에서 마치 '도장 깨기' 하듯 톱 플레이어들을 차례로 제쳤다.

세계 랭킹 10위인 이상호는 예선 1위(33초30)로 본선에 진출했고, 16강에서 2010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제이시 제이 앤더슨(24위·캐나다)을 눌렀다. 8강에선 2014 소치올림픽 2관왕 빅 와일드(공동 18위·러시아)도 제압했다. 4강에서 마우리시오 보르몰리니(공동 18위·이탈리아)를 꺾고 만난 건 지난 대회 우승자 실뱅 뒤푸르(7위·프랑스)였다. 이상호는 경기 초반 속도에서 밀렸지만, 공격적으로 턴하며 피니시 지점에 먼저 도착했다.

강원도 정선 출신 이상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스노보드를 접했다. 근처에 훈련장이 없어 고랭지 배추밭 눈썰매장에서 스노보드를 익혔다. 이 일화가 알려지며 '배추밭 소년' '배추 보이'로 불린다.

◇집중 지원에 급성장…"평창 메달 딸 것"

조선일보

국내에선 최상급 선수였지만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다. 2014~ 15시즌까지 월드컵 최고 성적이 24위였다. 올림픽 메달은 꿈꾸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2014년 말 롯데그룹(회장 신동빈)이 대한스키협회 회장사로 들어와 5년간 1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4년 이전까지 이상호는 이상헌 알파인 스노보드 총감독(당시 코치) 한 명에게서 배웠다. 이 총감독은 이상호뿐 아니라 선수 전원을 홀로 챙기며 요리, 운전, 장비 정비 같은 궂은 일까지 처리했다. 훈련은 슬로프에 기문을 꽂고 반복해 내려오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금은 외국인 전문 코치 3명과 전담 트레이너가 합류, 총 5명이 이상호를 집중 관리한다. 이상호 팀은 상대 선수 성격까지 고려해 전략을 짜고, 설질에 따라 턴을 어떻게 할지도 가르친다. 이상호에겐 전담 심리학자가 붙어 '멘털 관리'도 하고 있다.

집중 지원은 마침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이상호는 올해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회전·회전에서 금메달을 따내 2관왕이 됐다. 한국 스노보드 선수 중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건 이상호가 처음이다. 월드컵 최고 성적도 2015~16 시즌 12위까지 뛰어 올랐고, 올 3월(2016~17 시즌)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터키)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상호는 9일 유로파컵 우승 이후 "비시즌 기간 훈련이 잘됐다는 확신이 든다"며 "내년 올림픽에서 최고 기량으로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흰 도화지처럼 비어 있는 한국 설상 올림픽사(史)에 첫 발자국을 찍겠다는 결의에 찬 말이었다.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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