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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팝인터뷰②]'역적' 박은석이 말하는 '연기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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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에서 이어짐)

[헤럴드POP=노윤정 기자] 흰 피부에 까만 눈동자. 사이클 등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박은석은 먼저 수려한 외모로 시선을 끌었다. 또한, 외모만큼이나 말솜씨 역시 출중했다. 말을 잘하는 것을 보니 책도 많이 읽겠다 싶었는데, 그보다는 대본 읽는 것을 좋아한단다. 박은석은 “대본 읽는 걸 좋아해요. 특히 연극 쪽에서는 대본 제안이 많이 오는데, 내가 할 시간이 없어도 일단 다 받아서 읽어봐요. 무슨 역할인지, 내가 어떤 작품을 놓치는지 알아야 하니까 받아보고, 이후에 작품을 보러가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이 짧은 대답에서도 연기를 향한 열정이 느껴졌다. 한 작품을 마치고, 또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인 열정 가득한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헤럴드경제

사진=민은경 기자


박은석은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에 출연하며 처음으로 사극 작품에 도전했다. 첫 경험이었기에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았다. 특히 많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 하며 보고 듣는 것만으로 공부가 되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박은석은 극 중 어머니로 등장했던 서이숙(박 씨 부인 역)과 가장 많은 호흡을 맞췄다. 박 씨 부인은 홍길동(윤균상 분)의 가장 큰 원수 중 한 명으로, 서이숙은 극 초반 김상중(아모개 역)과 함께 압도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며 극의 인기를 견인했다. 그의 연기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박은석 역시 “너무 좋아요. 사실 굉장히 친근하시고 유쾌하시고 에너지도 좋으신 분이에요. 제 연기를 잘 받아주시고요. 다행이었죠”라고 말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많은 선배님들과 함께 하면 배우는 점이 항상 많아요. 연기뿐 아니라 현장에서 선배님들 지켜보면서 먼 미래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나도 꾸준히 해가다 보면 저런 위치에서 저렇게 편안하게 노련미 있게 잘 해쳐 나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리딩 현장에서 박준규 선배님(소부리 역)이 굳이 악역이라고 해서 일부러 못되게 하려고 할 필요 없고, 대본 안에 이미 나빠 보이도록 써져 있고 그대로 읽기만 해도 악역처럼 보이니까 제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셨어요. 서이숙 선배님도 ‘너의 모습으로 진심을 담아서 연기해라’고 해주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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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은경 기자


그러면서 사극 대사 톤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전했다. 박은석은 7세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배우의 꿈을 안고 20세가 넘어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외국에서 보낸 시간이 길기에, 베테랑 배우들도 어렵다는 사극 대사를 소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였던 것이 사실. 하지만 주변에서 박은석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제가 외국에서 살다 와서 드라마 제작사, 제 측근들 모두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면서도 캐스팅이 됐는데, 어차피 캐스팅 된 거 ‘말’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감정에 솔직하라고 하셨어요. 그게 제일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사실 어떻게 보면 그게 배우의 콤플렉스일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걸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하니까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했죠. (…) 사실 어머니랑 이야기할 때 말투랑 왕에게 보고하는 말투랑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 스승님이랑 이야기할 때의 말투가 다 다르잖아요. 그런 점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관계 안에서, 상대에 따라서 톤이 바뀌는데, 사극적인 톤이 필요할 때가 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관건은 대사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거죠”

하지만 자신이 함부로 다른 사람의 연기에 조언하지는 않았다. ‘역적’에는 윤균상, 채수빈, 심희섭 등 박은석보다 어린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이에 혹시 동생들에게 조언해준 부분은 없는지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전 연기에 대해서 제가 물어보는 스타일이지, 이야기해주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벽이 생길 수 있으니까, 웬만하면 연기 이야기는 잘 안 하려고 해요”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박은석은 연기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 배우들과 실제로 친분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런 점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역적’ 촬영장은 전 출연진이 친해질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거의 전 출연진이 촬영 중이 아니더라도 메이크업을 받거나 다른 씬 촬영을 기다리며 현장 스탠바이 상태였기 때문. 그렇기에 박은석은 극 중에서는 채수빈(가령 역)이나 홍(哄) 가 식구들로 나오는 박준규, 이준혁(용개 역), 이명훈(업산 역) 등과 엮일 일이 없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수시로 마주치며 주차장에서, 또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연기 호흡을 맞출 때 실제로 친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람과 내가 친하고, 서로를 믿고, 눈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연기하는 게 진심인가 아닌가’ 이걸 의심하지 않고. 서로를 그렇게 바라봐 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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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은경 기자


이런 노력 끝에 박은석은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며, 극 중 악역 포지션임에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는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다녀온 탄탄한 연기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옥탑방고양이’로 연극 데뷔한 박은석은 이후 ‘트루웨스트’, ‘햄릿’, ‘올모스트 메인’, ‘히스토리 보이즈’, ‘레드’, ‘카포네 트릴로지’, ‘엘리펀트 송’, ‘클로저’, ‘나쁜자석’ 등 다수 연극 무대에 올랐다. 차기작 역시 연극 작품인 ‘프라이드’. 그는 대중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연기와 연극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연기의 다른 점을 짚으며 각각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한 호흡으로 쭉 가는 것과 끊어서 가는 건 확실히 다르죠. 연기 스타일도 다르고, 발성, 시선, 제스처 이런 것들이 다 다르죠. 더 커요. TV는 누구나 다 1열 앞자리잖아요. 그런데 공연 때는 뒷자리까지 다 들리고 보여야 하니까, 과장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은데 당연히 더 크게 할 수밖에 없죠”

“가장 기본적인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연극은 내가 연기하는 걸 못 본다는 것. 그 대신 그 안에 들어가서, 존재해서, 한 번 시작하면 막이 내릴 때까지 그 안에 머물고 있는 거예요. 드라마는 며칠에 걸쳐 몇 장면을 끊어서 만들고, 그 안에 편집 예술도 들어가요. 순수하게 내 연기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내 연기에 카메라 감독님, 조명 감독님, 조연출, 스크립터의 의견까지 다 들어간 공동예술이니까요. 연극 때도 물론 무대나 조명이 있지만, 그 때의 연기는 호흡까지 다 내가 컨트롤 하는 거니까 조금 더 야생적이죠. 또 관객들과 즉각적으로 호흡할 수 있고요”

그렇다면 박은석이 생각하는 연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다들 똑같이 이야기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건데…”라고 운을 뗀 그는 잠시 고민한 뒤 말을 이었다.

“창조하는 과정이 제일 매력적이에요. 인간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고 다 비슷하게 살아가는데, 그 ‘인간’을 가지고 세상의 다양한 삶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창조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연기는 인물 디자인뿐 아니라 그 인물의 감정 노선이나 그 삶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것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작가와 감독, 배우 사이에 소통이 많아야 해요”

“배우 하길 잘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이 일 아니었으면 뭘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봐요. 원래 패션을 전공했으니까 패션 비즈니스 쪽으로 일하지 않았을까요? 인터내셔널 바이어라든지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라든지 아니면 패션 매거진 코디네이터라든지, 그런 쪽으로 빠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안 하길 잘했어요. 연기가 훨씬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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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가 좋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조금 들뜬 듯이 느껴졌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박은석은 정말 천생 배우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했다. 그런 그의 목소리를 밝게 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며 “제가 바쁘게 열심히 연기하면서 성공적으로 어떤 단계에 올라가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수익이 있을 거예요. 그 능력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해드리거나 조카에게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능력을 키워가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 같아요. 내가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고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게 행복해요. 막내임에도 가족들도 든든해하고요. 그런 게 행복인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드러냈다.

“부모님은 지금 미국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 하는 걸 좋아하세요. 연극만 할 때는 절 못 보셨거든요. 모니터링에 코멘트까지 잘 해주세요. 메신저에 가족 단체방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캡처된 사진부터 시작해서 아버지의 코멘트, 어머니의 코멘트가 잔뜩 와 있어요. 재미있어요. 좀 더 카리스마 있게 해라, 눈빛이 어땠으면 좋겠다, 옷은 왜 그런 걸 입었냐, 다양해요. 저희 집안이 평가는 냉정해요. 마치 남의 자식인 것처럼”(웃음)

박은석과의 만남은 마지막까지 유쾌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 자신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점으로 서클렌즈 착용 의혹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은석은 “이번에 사극 촬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클렌즈 낀 거 아니냐는 말을 했고, 심지어 감독님까지 촬영 중간에 오셔선 제가 민망할까봐 작은 목소리로 ‘혹시 렌즈 꼈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스태프들끼리 내기까지 했대요. 심지어 편집실에서 제 눈을 확대해서 확인까지 했다고….(웃음) 그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안 꼈거든요. 억울하잖아요. 제 연기를 욕하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 안 꼈는데, 그걸로 욕먹는 건 억울하잖아요. 그것만 알아주시면 돼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배우 박은석에 대해 더 알아줬으면 하는 점은 없는지 묻자 그저 “그냥 절 알아주시는 것 자체가 고마운 거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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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은경 기자


박은석은 배우로서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악역으로서 정점을 찍는 역할도 해보고 싶고, 로맨틱코미디 혹은 청춘물도 해보고 싶다는 그는 다양한 역할과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휴식이 주어진다면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인생의 여유도 즐길 줄 아는 듯이 보였다. 박은석은 그렇게 아직 보여줄 매력이 많은 배우였다.

“인생 잘 즐기고 있느냐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놓고 살고 있습니다. 정말 이 우주의 미세먼지 같은 제 인생을 공기에 띄워놓고 살고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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