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 책을 출간하고 ‘작가’로 불리고 있다. 1.5세대 이주민으로서 겪은 수많은 편견과 답답함 같은 진지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프고 힘든 이야기에 그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인지 ‘웃프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맞다. 나는 웃기려고 글을 썼다. 그 웃김을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뿌듯할 수가 없다. 내가 미학적으로 지향하는 ‘웃김’은 가벼운 웃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여성, 예술 프리랜서(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지을 수 있는 웃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다. 그래서인지, 웃기려고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일상의 나는 퍽 진지하고 재미없는 캐릭터다. 글을 통해서라도 웃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내게 웃음은 언제나 특정 상황에 분노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스스로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지독하게 자학적인 코드를 심어 놓아서 오히려 청자가 웃어도 될지 고민하게 만듦으로써 모두가 편하지만은 않은 농담을 하는 것이다. 불편함을 혼자 감당하기 싫은 이기적인 심보이자 웃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버티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 ‘웃기다’는 건 세상의 무례함을 아이러니로 받아치기 위한 기술이다.
맞다. 나는 웃기려고 글을 썼다. 그 웃김을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뿌듯할 수가 없다. 내가 미학적으로 지향하는 ‘웃김’은 가벼운 웃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 여성, 예술 프리랜서(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지을 수 있는 웃음이 가벼울 수만은 없다. 그래서인지, 웃기려고 글을 쓰는 사람 치고 일상의 나는 퍽 진지하고 재미없는 캐릭터다. 글을 통해서라도 웃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내게 웃음은 언제나 특정 상황에 분노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스스로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지독하게 자학적인 코드를 심어 놓아서 오히려 청자가 웃어도 될지 고민하게 만듦으로써 모두가 편하지만은 않은 농담을 하는 것이다. 불편함을 혼자 감당하기 싫은 이기적인 심보이자 웃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버티기 위한 몸부림이다. 결국 ‘웃기다’는 건 세상의 무례함을 아이러니로 받아치기 위한 기술이다.
불편함을 나눠서 갖는 농담의 힘은 그것이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성찰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쩌면 모두에게 무해한 농담이 필요할지 모른다. 세상의 아이러니를 비틀어 잠시나마 낄낄거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기꺼이 웃기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가볍고 빠른 대중적인 웃음이 아닐지언정, 때때로 웃어야 할지 고민될 만큼 발칙한 문장들일지언정.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