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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저분한 길거리에서 거룩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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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저분한 길거리에서 거룩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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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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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이 제 뜻으로 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비행기가 제 뜻으로 허공을 나느냐?”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는데 그가 거듭 말한다. “누구든지 제 뜻으로 살려면 이것을 먹어라.” 자세히 보니 깨끗한 접시에 어른 손가락 셋을 겹쳐놓은 것 같은 무엇이 곰지락거린다. 섬뜩하다. 자궁의 혈흔(血痕)이 채 마르지 않은 태아(胎兒)다. 줄 가운데 서있던 한 남자가 “내가 먹지” 하며 나선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는데 누군지 알 수 없는 그가 말을 잇는다. “저를 있게 한 저가 제가 있게 한 저와 하나 되려면 제가 저를 먹고 저한테 제가 먹히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느니!” 어렸을 때 충주 용산 개울에서 본 주검이 생각난다.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태아가 흐르는 물에 잠겨 손가락 발가락을 하늘거리고 있었지. …잠자리에서 일어나 채플에 무릎 꿇는다. 그날 왜 철부지 꼬마한테 죽은 태아를 보여주셨는지 짐작이 간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보고 지나쳤지만 한참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아이가 말했다. “여기 이렇게 태어나면서 죽은 나나 얼마쯤 살다가 죽을 너나 덧없는 인생이라는 점에선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런데 오늘 아침 채플에서 같은 아이가 달리 말한다. “아니야. 나는 태어나면서 죽었지만 너는 그동안 살면서 너를 있게 한 네가 네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지. 우리는 달라도 많이 달라.”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눠주시며 “받아먹어라. 내 살과 내 피다” 하셨다. 그렇다, 생명이 죽지 않고 살려면 제가 저를 먹고 제가 저한테 먹히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나를 있게 한 나, 내가 있게 한 나, 이 둘이 함께 사는 데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으니 먹으려면 죽여야 하고 먹히려면 죽어야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이란 생명을 위한 생명의, 입구와 출구가 동일한, 회전문(回轉門, revolving door)이다.





-보청기를 분명 귀에서 뽑았는데 보청기 음악 ‘젠’(禪, zen)이 들린다. 들려도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 흠, 이만하면 완벽한 환청(幻聽)이군. 생각하다가 잠든 모양이다.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잠을 깨니 그토록 선명하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귀 기울여도 안 들린다. 뭐야 이거? 그러니까 아까 들린 소리가 잠결에 들은 것이었던가? 아하, 사람이 잠을 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있는 소리 못 듣고 없는 소리 듣고. 사람이 깨어있지 않으면 이렇게 진짜를 가짜로, 가짜를 진짜로 보고 듣고 만지면서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고 그러는 거구나. 그러니 안심이다. 사람이 잠들었다는 건 죽지 않았다는 말이고 때 되면 깨어난다는 말 아닌가? 노리치의 줄리안이 옳다. “모든 것이 좋다(All is well).” 사람이 잠을 자든 깨어있든 한님 품 안에 있는 건 영원한 진실이니까.





-아침 채플에서 듣는 한 말씀. “한님이 있는 건 사랑이 있는 거다. 사랑이 있는 건 사랑이 흐르는 거다. 빛처럼 강물처럼 쌍방 아닌 일방으로 흐르는 거다. 사랑이 흐르는 건 공간이 있는 거다. 공간이 있는 건 시간이 있는 거다. 하지만 공간도 시간도 본디 없는 것. 그러기에 한님이 있는 건 참되고 영원한 사랑이 거짓되고 덧없는 세상에서 시작도 끝도 없이 흐르는 거다. 네가 여기 있는 것도 마찬가지. 너에게서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이 빛처럼 강물처럼 흐르지 않으면 너는 천상천하 어디에도 없는 거다.” …아멘!





다시 채플에서 보태주시는 한 말씀. “착각하지 마라. 세상에 네가 풀어야 할 ‘문제’란 없는 것이다. 무엇에 대하여 ‘그렇다’와 ‘아니다’로 대응할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붓다만큼 그리스도만큼 성장하고 성숙할 기회가 있을 따름이다.” …또 아멘!





-채플에서 듣는 한 말씀. …옥(玉)을 ‘구슬’로 보라는 말에는 모나고 거친 돌덩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원만(圓滿)한 보화로 만드는 과정을 보라는 뜻도 있다. 결과만 보지 말고 그 과정에 스며있는 한님의 솜씨를 보라는 얘기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보려면 그것이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왜 아니냐? 그러니까 보라는 말이다. 처음부터 한님은 당신 하시는 일을 남김없이 보여주셨고 지금도 보여주시고 앞으로도 보여주실 것이다. 남몰래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느냐? 아,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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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키지 않은 말 먼저 하다가 중간에 거두어들인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까지 도로 삼킬 순 없는 일. 아쉽지만 그나마 말을 계속하지 않고 중도에 멈춘 것만으로 혼자서 위안을 삼는다. 사소한 일에 깨어있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우리는 하느님을 위하여 무슨 색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만에 말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아무데나 있는 평범한 일에서 비범하고, 너저분한 길거리에서 거룩해야 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온갖 사악(邪惡)한 것들이 사는 동네를 비틀거리며 기웃거리다가 깨어난다. 거기에도 물론 두목이 있는 건 분명한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네의 모든 일이 그의 명(命)에 따라서 돌아간다. 그의 명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저도 속이고 남도 속이고 그렇게 해서 모든 것들이 서로 속고 속이게 하는 거다. 그에 속으면 그가 시키는 짓을 하게 되는데 미움 증오 질투 분노 폭력 따위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세상의 사악한 짓거리들이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두목의 명에 동(動)한 결과다. 그에 동(動)하지 않는 방법은 그에 동(同)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스스로 했는지 어디서 들었는지 아리송하다. 동(同)하지 않으면 동(動)하지 않는다는 교훈(?) 하나 얻으려고 밤새 지저분한 동네를 헤맨 셈이다. 무엇에 동(同)하지 않으려면 다른 길이 없다. 거리를 두고 그것을 이만큼에서 바라보는 거다.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그냥 보는 거다.





-“외로움이 당신을 관통하여 지나갈 때 당신한테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을 지켜보기만 하라. 그것이 가버릴 것이다. 그것에 함몰되지만 않으면 경험은 곧 지나가고 다른 무엇이 당신에게 온다. 그냥 그 모든 것을 즐겨라.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자유롭게 되고 순수 에너지의 세계가 당신 안에서 활짝 열릴 것이다. …외로움을 물리치려고 무슨 수를 쓸 것 없다. 그것에 휘말려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것은 당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가게 둬라. 이것이 당신의 참 자아가 하는 일이다. 깨어남은 싸우지 않는다. 풀어준다. 당신 앞에서 펼쳐지는 우주의 모든 것에 오로지 깨어있을 뿐이다. 당신이 참 자아 안에 머물러 있으면 마음에서 안 좋은 무엇이 느껴질 때도 당신 내면의 존재가 쓰는 힘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이 깨어남으로 가는 길의 본령(本領)이다. …속으로 번잡함이 느껴져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들이 더 이상 당신의 중심을 어지럽히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때 당신은 마침내 자유다. 당신 배후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넉넉히 살게 될 것이다. 그 내적 흐름의 황홀함을 맛보게 되었을 때 당신은 세상을 마음껏 소요(逍遙)할 수 있고 세상은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마이클 싱어).





노은저수지 뒷동산 걷다가 한 늙은이를 만난다. 어디 사느냐 묻기에 곧은터라 대답하니 전에는 거기가 여기와 같은 마을이었는데 저수지가 생기면서 딴 동네로 되었단다. 웃으며 속으로 묻는다. 자동차 있기 전에는 같은 마을이었는데 자동차들이 다니면서 딴 동네 된 것 아니오? 이빨 빠진 영감 얼굴이 참 착하다.





-채플에 향 피우고 무릎 꿇는데 한마디 하신다. 우리 형식(形式)으로 만나지 말고 실질(實質)로 만나자. 겉으로 만나지 말고 속으로 만나자는 말이다. 형식으로 만나는 게 가능한가요? 몰라서 묻느냐? 죄송합니다. 간밤 꿈에 눈사람처럼 머리와 몸통이 완전한 공으로 생긴 사람들이 장엄한 성당에서 그러고들 있더군요. 겉으로는 근엄하지만 속으로는 저마다 제 욕심 채우느라 바빴지요. 앞으로 상대가 누구든 형식 아닌 실질로 만나기를 힘써보겠습니다. 제가 그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너 있는 데가 어디든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거기에 내가 있다는 진실을 기억하면 저절로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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