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삼성·SK·한화 등 수십조 단위 현지 투자로 '관세 우회'
대미 투자 펀드 통한 年 200억달러 투자금 놓고도 韓기업 수혜 기대
대미 투자 펀드 통한 年 200억달러 투자금 놓고도 韓기업 수혜 기대
트럼프발 관세 폭탄 (PG) |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트럼프 2기 첫 해 한국 기업들은 미국이 위협적으로 꺼내든 무차별 관세 예봉을 피하기 위해 숨돌릴 틈 없는 날들을 보냈다.
미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지만, 무역수지 불균형을 문제 삼아 동맹국에도 '현금 투자 보따리'를 압박하는 트럼프 정부의 위협은 어떤 논리로도 쉽게 헤쳐 나가기 힘든 도전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에 생산·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세웠다.
◇ FTA 체결국 韓도 무역흑자 겨냥 '관세폭탄'…현지투자로 '관세우회'
대선 후보 시절부터 세계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 직후부터 '4월 상호관세 부과'를 공언하며 기업들을 긴장시켰다.
수출 주도형으로 짜인 한국 경제는 트럼프 2기 시작 바로 전해인 2024년 대미 수출이 1천278억달러, 대미 무역 흑자가 557억달러로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대미 수출에 강하게 기대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상호관세'를 처음 입에 올릴 때만 하더라도 상대국이 부과한 만큼의 관세를 상대국에도 돌려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해 한미 FTA 체결로 실질적으로 관세가 '제로'(0)에 수렴하는 한국에는 미국이 과세할 근거가 없다는 논리를 펴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런 기대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는 것은 곧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CG) |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등이 미국의 우방이지만 무역을 통해 미국을 착취해왔다며 '불공정 무역'을 바로잡기 위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발표에 앞서 자동차·자동차 부품. 철강·알루미늄 상품 등 자국의 주요 산업 보호를 위해 25% 수준의 품목 관세도 꺼내 들었다. 이후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50%까지 올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 기업과 통상 당국은 미국의 관세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한편, 피할 수 없는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고심하면서 대미 투자를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 자동차, 부품 및 물류, 철강, 미래 산업 분야에 총 210억 달러(29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액은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능력 확대와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일관 제철소 건설, 로보틱스,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미국 기업과의 협력, 에너지 인프라 설립 등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HMGMA |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3조6천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계획을 수정해 대미 투자 규모를 총 370억 달러(51조원)로 확대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7천만 달러(5조3천억원)를 투입해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항공은 트럼프 취임 직후 미국의 항공 제작사 보잉의 항공기 및 항공기 엔진 제작업체 GE에어로스페이스와 총 327억 달러(48조원) 규모의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대미 투자를 활발히 하는 기업 이미지를 심었다.
◇ 韓 '2천억+1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놓고 韓기업 참여·수혜 기대
작년 8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협상을 타결한 뒤에도 한국 기업의 대미 진출 및 협력은 더욱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165억 달러(22조9천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작년 8월 애플과도 차세대 칩을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는 내용의 대규모 계약을 맺으며 대미 투자를 확대했다.
미국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
현대차 역시 미국 최대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 차량 5종을 공동 개발해 2028년 출시한다는 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다.
한화는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제안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매개로 투자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미국 직접 투자·진출은 한국 정부가 조성하는 대미 투자 펀드를 통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한미는 작년 8월 정상회담에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고, 대미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양국이 서명한 양해각서(MOU)에서 한국은 총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2천억달러는 매년 최대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자금을 요청하는 이른바 '캐피털 콜' 방식으로 이뤄지며, 1천500억 달러는 조선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
2천억달러 투자의 경우 미국 대통령이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인 투자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하기로 했다.
다만, 투자위는 사전에 한국의 산업통상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협의위원회와 협의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만을 미국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안전장치'를 뒀다.
한화 필리조선소 |
2천억달러 투자 분야는 조선,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AI, 양자컴퓨팅 등으로, 양국의 경제 및 국가안보 이익을 증진하는 분야로 설정했다.
미국은 투자 프로젝트에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벤더·공급업체 선정 시 한국 업체를 우선하고, 개별 프로젝트별로 가능한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하도록 했다.
투자 이행 과정에서 분쟁이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협의위 등을 통해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결해나가기로 하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조선 분야 1천500억달러 투자의 경우 한국 정부가 직접 또는 협의위를 통해 민간투자, 보증, 선박금융 등을 통해 지원한다. 조선 분야 투자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한국 기업에 귀속된다.
이 같은 협의 내용을 두고 일각에서는 결국 모든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고, 투자 이익도 미국이 다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에서는 한국 기업 참여를 우선하도록 하는 등 안전장치를 곳곳에 마련했기에 결국 이 투자금의 상당액은 한국 기업에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 서명과 관세 인하로 우리 대미 수출과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완화됐다"며 "상업적 합리성을 고려해 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를 마련하고 외환시장에 대한 부담도 줄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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