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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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내가 일하다 다치면 엄마 가슴 무너지고요
집에 못 돌아가면 가족은 어떡합니까
가수 하림이 만든 노래다. 단순하고 명징해서 두어번만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다.
하림과는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10년도 훌쩍 전의 일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기획하면서 음악 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좋겠다 싶어 자료를 찾던 중에 하림이 아프리카를 여행한 다큐를 발견했다. 나는 하림을 잘 모를 때라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하림 알아요? 꺄오, 너무너무 좋아요. 에스엔에스(SNS)도 없던 시절 누군가 하림의 전화번호를 알아 와 연결해주었다. 여행을 서너달 앞둔 일요일 오전에 하림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최대한 빠르게 10초 안에 내 소개를 하고 물었다.
혹시 아프리카 같이 가실래요?
뭐라고요? 아프리카요? 잠이 깬 목소리였다. 옳다, 됐다. 나는 천천히 최선을 다해 우리의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설명했고 다 들은 하림이 대답했다. 만나죠.
그렇게 하림과 한달 정도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뮤지션과 함께하는 여행의 정수를 맛보았다. 밤이 되면 스무명 남짓의 여행자들은 다들 하림 곁으로 모였다. 우쿨렐레 하나면 무슨 노래든 가능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긴 여행이라 피로가 쌓이고 사소한 갈등이라도 생길라치면 어김없이 하림의 노래가 들렸다. 말라이카, 나의 천사여,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의 남자인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가 노래하면 모든 게 풀렸다. 여행의 기획자이자 진행자였던 나에게 가수 하림은 선물이었다. 음악이, 예술이 이토록 관계를 유연하고 평화롭게 만드는구나.
어른들은 가르치려 하지 말고 청소년은 징징대지 말자, 가 당시 우리 여행의 모토였는데 청소년과 어른 모두 하림을 좋아했다. 처음엔 관심 없던 청소년들은 여행 말미에 모두 우쿨렐레를 연주하게 되었다. 귀국 후에 하림은 청소년 여행자들에게 우쿨렐레를 하나씩 사주었다. 잘 살펴봐, 교육자의 피가 들끓는다니까, 라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여행에서의 어느 밤, 하림이 열여섯살 따슬이에게 우쿨렐레를 가르치고 있었다. 자 여기서부터 다시 해보자, 자 이번엔 여기서부터 다시 해보자.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고 배우는 두 사람 옆에서 나는 살짝 걱정이 됐다. 그들이 연습하고 있는 곡이 아프리카 기우제 노래였기 때문이다. 저토록 열과 성을 다해 비를 내려달라고 노래해도 되나? 그날 새벽 호각 소리에 잠이 깼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캠핑하고 있는 계곡에 비가 들이칠지 모르니 산 위로 대피하라고 캠핑장 스태프들이 여행자들을 깨우고 있었다.
맙소사, 그렇게 열심히 노래하더니 그 맑은 정성이 하늘에 안 닿을 리 있나.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싸고 텐트를 걷어 언덕 위로 피신했다. 우리가 타고 다니던 트럭은 바퀴가 물에 잠겼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머리를 맞대고 그토록 진지하게 가르치고 배우던 두 사람, 아프리카의 밤, 아프리카의 초원.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나는 하림에게 로드스꼴라 음악 수업을 부탁했다. 흔쾌히 응한 하림이 첫날 수업을 마치고 나에게 말했다. 다 가르쳤어요.
네?
더 가르칠 거 없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 돼요 하림. 한 학기 수업이라 6월까진 매주 나와야 해요.
종종 수업 시간에 들여다보면 하림은 태평하니 학생들의 우쿨렐레나 조율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학기 말에 학생들은 모두 노래를 만들 줄 알게 되고 음반도 제작했다. 무림 영화 속 고수처럼 헐렁헐렁 시간을 보내는 듯 하더니 역시나! 제대로 음악을 전수해주었다.
그 학생들의 수료 파티 날 라디오 생방송 가는 길에 하림은 시간을 쪼개 와주었다. 찌질한 학예회를 구경해주고 공연도 해주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같은 하림의 히트곡을 원했지만 몽골 악기를 가져와 목을 아주 크게 열어 상반신을 모두 울림통으로 쓰는 몽골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월드뮤직을 하는 뮤지션다웠다. 아일랜드 여행을 함께 하자 기약했지만 기약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하림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땅과 돈을 갖지만 전쟁에서 진 사람은 음악을 갖는다. 그 음악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림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구나. 고향을 잃은 사람들, 자식을 잃은 사람들, 친구를 잃은 사람들, 빼앗기고 잃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와 함께 여행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모두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저녁엔 집에서 쉬고 휴일에는 여행도 가는
그런 평범한 일들이 왜 나는 어려운가요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오늘은 하림의 노래를 다 같이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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