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2년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총경회의'를 주도했다가 정직 징계를 받고 경찰을 떠난 류삼영 전 총경이 27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총경회의 전시대' 제막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작년 말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경찰의 민주성·중립성 확보를 위한 역사적 걸음’이라는 이름의 요란한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선 55명의 전·현직 경찰관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분홍빛 무궁화 모양으로 벽을 가득 채웠다.
명예 회복의 주인공이 된 55명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2년 7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총경회의’에 참석했던 경찰들이다. 당시 정부가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이유로 행정안전부 산하에 경찰국 신설을 논의하자 “정권의 경찰 장악 시도”라며 반발했다. ‘회의를 중지하라’는 윤희근 당시 경찰청장 후보자의 명령에도 항명성 회의를 강행한 이들은 오랜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전 총경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렀다.
제막식 행사 딱 한 달 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경찰 수사권에 대한 통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 수사는 누가 지휘하느냐”며 윤호중 행안부 장관에게 “검찰도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는데 경찰 수사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돼 있다”고 했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 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의 불호령 직후 윤 장관은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 지휘부 회의에 직접 참석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의 이런 행보는 공교롭게도 경찰이 여권 주요 인사에 대한 수사가 한창인 시점에 나왔다. 경찰은 전재수 전 장관이 통일교로부터 고급 시계를 받았다는 ‘통일교 로비’ 의혹, 민주당 의원들이 선거를 앞두고 많게는 1억원을 받았다는 이른바 ‘공천 헌금’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여권 인사가 연루된 수사를 뭉갠다는 짙은 의심을 받고 있다. 그 사이 김병기 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2024년 자신의 배우자 사건을 수사하던 일선 경찰서장에게 청탁성 전화를 건 뒤 관련 사건이 급하게 종결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런 와중에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목 놓아 외쳐 온 그 55명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총경 회의를 주도한 뒤 지난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전직 총경 두 사람은 정권이 대놓고 경찰 수사권 통제를 언급하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아직 현직에 남아 있는 대다수의 총경 회의 참석자들도 그렇다.
이 정부는 당시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옷을 벗은 김창룡 전 경찰청장을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로, 총경 회의에 참석한 황정인 총경을 ‘헌법 존중 TF’ 실무 팀장으로 앉혔다. 다른 참석자들도 ‘명예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요직으로 복귀시켰다. 경찰 안에선 이들의 정치적 중립이 정권에 따라 달라진 것이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어제의 용사들이 오늘날 권력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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