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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11] 오백년 앞을 볼 수 있다면

조선일보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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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11] 오백년 앞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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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언제였을까. 온갖 풍파를 겪은 대한민국이 오늘날 모습을 갖춘 건 1444년 1월 19일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달에 주상이 언문 28자를 친히 만들었다. 그 글자는 옛 전자를 본떴으며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뉘는데, 이를 합쳐야 글자가 이루어진다. 문자와 우리나라의 속어에 관련된 모든 것을 쓸 수 있다. 글자는 간단하지만 무궁하게 응용할 수 있다. 이를 훈민정음이라고 한다."

한글의 원리와 용법이 상세히 적힌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일보DB

한글의 원리와 용법이 상세히 적힌 훈민정음 해례본. /조선일보DB


한국고전번역원이 태백산사고본을 저본으로 번역한 ‘신역 세종실록 37′에 실린 어느 하루다. 세종이 재위한 31년 7개월 동안 국정 기록이 담긴 이 실록은,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를 살피고 나라 바깥 외교를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지 조정 대신과 논의한 내용으로 빼곡한데 이날 돌연 한글 창제 기록이 등장한다. 음력으로 1443년 마지막 날이었다.

새로 생긴 것은 언제나 기이하고 이상하고 어색하다. 당대 최고 지식인이던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이 퍼지는 걸 반대하고 나섰다. 1444년 3월 9일 상소 내용이 볼 만하다. “오직 몽고, 서하, 여진, 일본, 티베트 같은 곳만 각각 제 글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두 오랑캐들의 일이므로 말할 것이 못 됩니다. (…) 이번에 따로 언문을 제작하여 중국을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와 같아지려고 하는 것은 이른바 소합향 같은 귀중한 약재를 버리고 말똥구리의 똥을 취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문명에 큰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임금이 만든 글자를 ‘말똥구리의 똥’에 비유하는 패기도 대단하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목숨 걸고 상소를 올렸으리라. 지금 자신이 믿는 것을 주장하는 일은 이토록 무섭다. 오백 년 후 한글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겐 얼토당토않은 무지의 표상일 뿐이니. 현재 진실로 그러하다고 믿는 사실은 긴 세월에서 보자면 어떤 모습일까. 먼 미래에서 돌아보면 어떤 하루가 꼭 필요했고, 어떤 하루가 완전히 무지했을까.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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