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세계선수권 8강 올라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 조민재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의 실내 축구 연습장에서 바닥에 누운 채 다리를 꼬아 공을 잡는 자세를 취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8강에 오른 그는 “프리스타일 축구가 하나의 문화로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
지난 13일 폴란드 소폿에서 열린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권 대회(WFFC) 16강전. ‘미즈네야’라는 닉네임을 쓰는 조민재(23)는 발등에 공을 올린 채 바닥에 앉아 있다가 공을 차올리더니 펄쩍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무릎으로 공을 잡은 그는 한 바퀴를 회전한 뒤 등으로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반동으로 곧바로 한 바퀴를 돌면서 두 발로 우뚝 섰다.
조민재가 ‘수어사이드’라는 이름의 고난도 동작에 성공하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졌고, 승리를 직감한 그는 공을 바닥에 힘껏 내던지며 포효했다. 프리스타일 축구 세계 랭킹 34위인 조민재는 이 경기에서 세계 9위 멕시코 선수를 이기고 8강전에 진출했다. 조민재는 이어진 8강전에서 이번 대회 챔피언에 오른 세계 1위 제시 말렛(네덜란드)에게 져 탈락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와 권위를 자랑하는 WFFC에서 8강에 진출한 첫 아시아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조민재가 지난 13일 폴란드 세계 선수권에서 연기하는 모습. |
프리스타일 축구는 음악에 맞춰 축구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예술 스포츠다.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남들과 차별되는 기술을 선보이는 집중력과 창의력이 요구된다. WFFC에선 3분간 일대일 대결이 펼쳐지는데, 두 선수가 30초씩 번갈아 가며 세 차례 연기를 펼친다. 심사위원 5명이 10점 만점으로 채점한 점수로 승부를 가린다. 각 대륙 선수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전 세계 16명만 WFFC에 나선다. 조민재는 아시아 선수권 준우승자 자격으로 출전했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실내 축구장에서 만난 조민재는 “16강전부터 강한 상대를 만나서 연기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며 “8강에서도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았고, 행복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프리스타일 축구에 입문하기 전까진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3년간 바둑을 배웠고, 축구는 학교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즐기는 게 전부였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호나우지뉴(브라질) 등 유명 축구 선수들이 공으로 묘기를 부리는 영상을 본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조민재는 혼자서 축구공 묘기를 흉내 내다가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에 프리스타일 축구 동호회를 찾아가 전문적으로 기술을 배웠다. 그는 “하루 7시간씩 훈련에 매진했다”며 “아파트 놀이터나 공원에서 기술 연습과 팔굽혀펴기 같은 근력 운동을 했고, 댄스 학원에선 비보잉을 배우고 태권도 도장에서 덤블링 등 묘기 동작을 연습했다”고 했다.
그렇게 프리스타일 축구에 빠진 조민재는 고등학생 때부턴 크루 멤버들과 전국 지자체 행사, 학교 진로 탐색 행사 등에서 공연을 펼쳤다. 공연을 하면서 번 돈을 모아서 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했다. 공연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작년까지만 해도 편의점이나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도 병행해야 했다. 그는 “공연 요청이 뚝 끊긴 코로나 시기가 정말 힘들었다”며 “이 운동을 접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어떻게든 버텨 보자’는 생각으로 견뎠다”고 했다.
조민재의 목표는 프리스타일 축구에서 세계 챔피언이 돼 한국을 알리는 것이다.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축구 국가대표 김민재를 언급하며 “축구엔 김민재가 있고, 프리스타일 축구엔 조민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프리스타일 축구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무대에도 나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민재는 “제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라 인기를 얻거나 사람들한테 인정을 못 받아도 괜찮다”면서도 “하지만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브레이킹처럼 프리스타일 축구가 선수도 많아지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면 정말 좋을 것”이라고 했다.
☞프리스타일 축구
축구공을 가지고 묘기를 부리는 예술 스포츠. 손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활용하여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양하고 창의적인 고난도 동작을 선보여야 한다.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권 대회(WFFC)는 3분동안 두 선수가 30초씩 번갈아 가며 묘기를 하는 일대일 대결로 진행된다. 심사위원 5명이 매긴 점수를 더해 승자를 정한다.
[김영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