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 미카엘은 1926년 8월15일에 태어났다. 별종이었다. 고향은 이라크 바그다드인데 민족은 유대인이었던 것. 자라서 좌파 지식인이 됐다. 젊어서부터 이라크 왕정에 맞서고 사회의 불평등을 비판했다. 이라크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탄압을 받았다. 잡혀가 목숨을 잃을 위기가 되자 이웃 나라 이란으로 달아났다. 1949년에 유대인이 모여 사는 나라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이스라엘에서도 삶은 편치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이민자 캠프에서 가난과 불편을 겪었다. 유럽이나 미국 출신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도 받았다. 사미 미카엘은 이스라엘에서도 별종이었다. 아랍어를 쓰는 좌익 유대인이었다. 아랍계 소수민족과 이민자 유대인의 힘든 현실을 취재해, 이스라엘 공산당 계열의 신문에 썼다.
1953년에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이 죽었다. 소련이 지상낙원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사미 미카엘은 사회주의 이상은 버리지 않았지만 조직에 환멸을 느꼈다. 공산당에 실망하고 1955년에 탈퇴했다. 이때부터 15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수문학을 따로 배워 댐의 수문을 관리하며 살았다.
히브리어에 익숙해지자 소설을 썼다. 가난한 이민자와 이스라엘에서 차별받고 사는 아랍인의 이야기를 썼다. 유대인 여성이 받는 억압에 관해서도 썼다. 어린이 책도 썼다. 세계에 이름난 작가가 됐다.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회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인종 차별하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집회에 나가 연설하고 시국 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인종주의, 광신, 점령 정책이 나라를 망친다”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바랐다. 살아 있었다면 지금 상황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한국 언론에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비판한 작가”로 소개됐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마을을 세우는 일에 반대했다. 이스라엘과 유럽에서 널리 읽히고 사랑받은 작가다. 언젠가 한국어로도 그의 작품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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