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7 (화)

[신태용 신의 한수]사비 예측 놀랍고, 변화무쌍한 카타르 더 놀라웠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카타르, 아시안컵 깜짝 우승

산체스 감독, 상대 맞춤형 전술

귀화군단을 원팀으로 만들어

한국의 점유율축구 아쉬움

자긍심 잃지말고 다음 준비해야

중앙일보

2019 아시안컵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카타르축구대표팀.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2019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카타르가 정치적 이유로 2017년 UAE와 단교했지만, 이웃나라 오만을 비롯해 중동국가 축구팬 2만여명이 카타르축구대표팀을 응원했다.

카타르가 일본을 3-1로 꺾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전, 방송을 통해 카타르 우승을 예측한 사비 에르난데스(스페인)의 '신기'가 놀랍다.

나를 놀라게 만든 또 한사람이 있었다. 아시안컵 내내 큰 그림을 그린 펠릭스 산체스(44·스페인) 카타르 감독이다. 그는 상대팀에 따라 변화무쌍한 전술을 꺼내들었다.

중앙일보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맞붙은 산체스 카타르 감독과 모리야스 일본 감독.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과 8강에서는 파이브백(수비 5명)을 내세웠다. 한국 공격수 손흥민(토트넘)과 황의조(감바 오사카)가 뒷공간을 빠져들어가는 움직임이 좋다는걸 간파했다. 카타르 파이브백은 밀고 올라오지 않고 내려 앉았다. 역습 한방으로 한국을 1-0으로 눌렀다.

카타르는 4강전에서는 상대팀 아랍에미리트가 홈팀인데도 공격적인 포백을 내세웠고, 4-0 대승을 거뒀다. 카타르와 결승전을 앞두고 일본의 모리야스 감독은 혼란스러웠을거다.

산체스 감독은 일본과 결승전에 다시 파이브백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한국전 파이브백과 운영방식이 달랐다. 일본에는 손흥민처럼 저돌적으로 돌파하는 공격수가 없었다. 카타르는 파이브백인데 쭉 밀고 올라와 일본을 무너뜨렸다.

산체스 감독의 선수활용도 놀라웠다. 부알렘 코우키를 파이브백의 중앙에 세우기도하고, 4-4-2 포메이션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9 아시안컵 우승 후 기뻐하는 카타르 축구팬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구 274만명인 카타르는 '오일머니'를 앞세워 한때 대표팀의 60%를 귀화 선수로 채웠다. 하지만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뒤 전략을 수정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유망주를 데려다가, 2004년 세운 아스파이어 아카데미를 통해 육성했다.

FC바르셀로나 유스 코치 출신 산체스 감독은 2006년 아스파이어 아카데미 육성 책임자를 맡았다. 2013년부터 카타르 19세, 20세,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면서, 카타르 축구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중앙일보

2019 아시안컵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카타르축구대표팀. [EPA=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감독으로 상대했던 카타르축구는 약점이 분명했다. 좋을 때는 무섭게 리듬을 탄다. 하지만 좋지 않을 때는 쉽게 포기한다. 원팀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공략했었다.

이번 카타르대표팀에는 해외출신 선수가 7명이나 됐다. 알모에즈 알리는 수단 , 부알렘 코우키는 알제리, 카림 부디아프는 프랑스, 바심 알라위는 이라크, 페드로 코레이아는 포르투갈, 압델카림 하산과 아메드 알라엘딘는 이집트 출신이다.

하지만 산체스 감독은 선수들이 서로 짜증내지 않고 싸우지 않게 만들었다. '덜 다듬어진 보석' 알리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뛰면서 9골을 몰아쳤다.

중앙일보

2019 아시안컵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카타르축구대표팀.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8강에서 탈락한 뒤 난 UAE에 남아 4강전과 결승을 지켜봤다. '남의 잔치'를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축구가 충분히 우승할 수 있었을텐데…'란 아쉬움이 계속해서 들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베트남이 8강에 오르고, 키르기스스탄 등이 약진했다. '평준화'라기 보다는 '하향 평준화' 같다. 한국과 호주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기존에 잘하던팀들이 정체됐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이 지적했듯, 우리나라는 '점유율 축구'에 얽매였다. 상대가 강팀이든, 약팀이든 똑같은 포메이션과 전술로 나섰다.

우리선수들이 개인기와 1대1 능력 모두 앞서는데, 상대를 부수기 위해 과감한 공격을 펼치지 못한점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아시안컵을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상대가 파이브백을 내려섰을 때 어떻게 운영하고 공략할지 배웠다.

중앙일보

지난달 25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패한 손흥민이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9년간 아시안컵 무관에 그치니 일부 축구팬 분들이 '아시아의 호랑이'가 아니라 '아시아의 야옹이'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존심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강은 아니지만, 여전히 최상위팀이다. 우리는 아시아 최다인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했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2018년 월드컵에서는 세계 1위 독일을 꺾었다.

남들이 욕한다고 쫄 필요는 없다. 아시안컵 우승을 못해 아쉽지만, 항상 마음속으로는 자긍심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아시안컵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 되어야 한다.

아부다비에서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