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너무도 강한
자기 확신에 빠져 있다…
비판을 “바보”라 하고
“무식하다”고 면박 주는
그 과도한 자신감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자기 확신에 빠져 있다…
비판을 “바보”라 하고
“무식하다”고 면박 주는
그 과도한 자신감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지난 5월 대통령 선거 운동 중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가 경기도 파주시 유세에서 경기 지역 화폐인 '파주페이' 패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후보는 자신의 지역 화폐 구상이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책"이라고 했다. /뉴스1 |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관은 정통 이론과 거리가 있지만 자신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그는 국가 주도, 재정 선도로 경제를 살린다는 독특한 성장론으로 주류 경제학과 맞섰다. ‘호텔 경제학’을 내세워 “돈이 안 들어와도 돈이 도는” 마법의 경제 순환을 주장했고, 정부 투자의 ‘한국판 엔비디아’로 “세금 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반박과 비판은 가차 없이 잘랐다. 나랏빚을 우려하면 “무식한 소리”라 하고, 승수(乘數) 효과가 낮다고 지적하면 “바보”라고 일축했다. 너무도 확신에 가득 차 어떤 반론도 먹혀들 틈이 없어 보였다.
‘신(神)의 영역’으로 불리는 주가 예측에서도 이 대통령은 거침없었다. 얼마나 자신만만한지 주가 상승을 장담한다며 온 국민에게 주식을 사라고 독려할 정도였다. 선거 직전 유세에서 그는 자신이 당선되면 “그냥 놔둬도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말을 해도 잘 안 믿으니...”라면서 코스피 ETF에 1억원을 넣고는 “(주가가) 더 좋아지기 전에 빨리 참여하자”고 했다. 자신을 믿고 투자하라는 것인데, 실제로 이 대통령 취임 후 코스피가 18%나 올랐다. 지금까지 실적만 보면 장담이 맞아떨어진 셈이 됐다.
주식에서 채무 탕감 이슈까지, 이 대통령의 경제 관심사는 실로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각별했던 것이 현금 지원책이었다. “정책이란 돈이 돌게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현금으로 마중물을 부으면 소비가 살아나고 경기가 회복된다고 했다. 특히 지역 화폐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정부·지자체가 약 10%를 보조해 지역 화폐를 쓰게 하면 이에 따른 가치 창출 효과, 즉 승수 효과가 10배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 화폐가 “나중에 제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책”이라고 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대단했다.
정권을 잡자 이 대통령은 즉각 이론을 실행에 옮겼다. 초대형 추경 예산을 편성해 전 국민에게 14조원어치 소비 쿠폰을 지급하기로 했다. 5000만명 손에 일일이 유효기간 4개월짜리 상품권을 쥐어주고 “이래도 안 쓸래”라며 다그치는 정책이었다. 현금 살포는 코로나 때 각국 정부가 꺼내 든 비상 대책이었지만 코로나 종식 후 평시 상황에서 쓴 것은 이재명 정부가 거의 유일했다. 일본 이시바 정권이 ‘19만원 지원금’ 공약을 내걸었으나 여론 반대가 강해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돈을 뿌리면 확실히 경기 상승 효과는 나타난다. 그러나 생각만큼 크진 않다는 게 그동안 실증 연구의 결론이었다. 국내외 기관들은 추경이 경제성장률을 0.1~0.2%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지원금이 추가 소비를 창출하는 효과가 그다지 세지 않기 때문이다. 5년 전 코로나 때도 전 국민에게 14조원을 뿌렸지만 그중 소비로 이어진 것은 약 30%뿐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원금의 승수 효과가 “10배”라고 했지만 실제 측정해보면 0.22배 정도로 나온다(한국은행 2018년 보고서). 현금 지원이 마법의 카드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노벨상감”이라 자부했지만 현금 뿌리기는 리스크를 수반하는 위험한 정책이다. 경제학 이론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한 ‘돈의 역습’을 경고한다. 첫째, 물가 자극이다.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안 그래도 심상찮은 물가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다. 부동산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둘째, 금리 상승이다. 정부는 추경 지출 21조원 전액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국채를 찍으면 금리가 올라가고, 금리 상승은 경기에 마이너스다. 이자 부담도 늘어난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도리어 서민 경제를 해치는 역설이 빚어질 수 있다.
셋째, 재정 악화다. 추경으로 국가 부채가 1300조원을 돌파해 GDP의 50%에 근접하게 됐다. 아직 절대 수준은 높지 않지만 증가 속도가 주요국 중 단연 빠르다. 자칫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은 나랏빚을 우려하는 비판을 “힘센 사람들”의 논리로 몰았다. 그가 ‘힘센 사람들’로 지목한 것은 “보수 언론, 경제 관료, 대기업 임원”이었다. 그러나 달러 패권국 미국조차 빚이 급증하자 신용 등급을 강등당했다. 우리는 기축(基軸) 통화국도 아니다. 부채의 역습이 시작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현금 지원이 성공을 거두려면 이 모든 위험 경로를 다 피해 가야 한다. 풀린 돈이 초정밀 유도탄처럼 정확하게 기대하는 곳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물가를 자극해선 안 되고, 금리를 건드려서도 안 되며, 재정 악화 우려를 부추겨서도 안 된다. 소비 쿠폰을 받은 국민은 원래 쓰려던 곳 말고 새로운 소비처에 써야 한다.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 급의 고난도 미션이지만 이 대통령은 너무도 강한 자기 확신에 빠져 있다. 정책 비판을 “바보” “무식한 소리” “힘센 사람 논리”로 묵살하는 그 과도한 자신감이 더 위험해 보인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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